황혜진 국제부 차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번쯤 들어봤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그래서 국호도 영어로 ‘Republic of Korea’(ROK)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共和)주의 2개의 사상에 기반을 둔 국가란 의미다. 군사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이뤄낸 만큼 민주주의 자체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된 헌법 제1조 제2항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가 인식하고 공유하는 가치다.

문제는 공화주의다. 이 개념은 글자의 뜻 자체로만 보면 공동의 이익,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전체주의 국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독재정부 모두 공화국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독재가 공화주의로 잘못 포장된 예다. 공화주의 개념은 현대 공화주의의 시초가 된 로마의 정치 체제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로마 공화정(republica)은 통치하는 집정관과 귀족 중심의 원로원, 평민 중심의 민회 3개의 기둥을 둬 특정 권력이 공동체를 좌지우지하지 못했다. 3개의 기둥으로 다수결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배제, 이를 통해 공동체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 모든 시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화주의 가치를 헌법에 반영한 것도 국민에게 주권이 있되, 다수에 휩쓸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가치를 두기 위함이었다. 탄핵 사태는 일차적으론 인물의 문제였지만,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틈새로 자라난 극단적 진영 논리와 양극화에 따른 무한 대립의 결과이기도 하다. 공화주의 실종 사태가 빚은 비극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며 ‘South Korea’ 대신 일부러 ‘ROK’로 지칭하며 한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강조했다.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면서 조기 대선과 개헌 논의가 본격화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당선된 8명의 대통령 중 3명은 탄핵소추 되고 4명의 대통령이 구속된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새로운 정치 체제들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거나 의원내각제로 바꾸자는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치 제도만 바꾸면 없던 대화와 타협이, 무너졌던 견제와 균형이 되살아나느냐는 점이다. 170석으로 의회 권력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지난 10일 당 대표 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후보 중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 상황이 대선 당일까지 이어진다면 이 전 대표는 대통령직에 당선돼 행정 권력까지 손에 넣게 된다. 사법의 정치화 문제가 단기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대표는 입법, 행정에 이어 사법 권력까지 거머쥘 수 있다. 두 달여 후면 ROK의 미래가 걸린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한다. 분명한 것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이끌 새 대통령은 ROK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기자
황혜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3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