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만에 세번째 시집 ‘마중도 배웅도…’ 펴낸 박준

 

떠난이의 빈자리 담담히 노래

시에 불타오르던 때 있었지만

시와 거리를 둘 시간도 필요해

 

A4 4~5매 덩어리글 덜고 덜어

한 행 짜리 ‘미니멀리즘 시’도

시 53편·산문 1편 덧붙여 실어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출간한 박준 시인이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지난 8일 진행한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박윤슬 기자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출간한 박준 시인이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지난 8일 진행한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박윤슬 기자

“7년이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저로서는 최대한 열심히 달려온 시간이에요.”

‘문단의 아이돌’ 시인 박준이 돌아왔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로 64쇄까지 중쇄를 거듭하며 20만 부 판매를 돌파하고 전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까지 10만 부 고지 위에 올려놨던 주인공. 독자들의 갈증에 빠르게 응답할 만도 하건만 장장 7년 만에 신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내놓은 박 시인을 지난 8일 만났다.

“시(詩)지상주의자로서 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나니 시와 거리를 두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시인의 말처럼 그동안 그의 글은 시 이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두 번째 시집 출간 이후 시인은 두 번째 산문집 ‘계절 산문’을 내놨고 2020년부터는 3년 동안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작가 없이 시인이 직접 모든 대본을 썼다. 계간 문예지들의 청탁도 수차례 고사했다. 그 덕에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의 대다수는 어떤 지면에도 발표된 적 없는 그야말로 신작시들이다.

이번 시집도 시의 길이는 길지 않으며 종이의 공백은 많다. 독자들이 사랑하던 박 시인의 ‘미니멀리즘 서정시’다. 한 행으로 이뤄진 시도 많다.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버릴 수가 있었을까 그러니 마냥 넣어두고 다녔지 작은 열쇠처럼 가끔 잘 있나 꺼내보았다가도 이내 다시 깊숙이 넣어두고 혼자 있게 했지’(‘공터’ 전문). 이와 같은 단 한 줄을 위해 시인은 “A4 용지로 4∼5장을 덩어리째 준비한다”고 말했다. “중심에 꽂힌 막대를 넘어뜨리지 않으며 계속하는 모래성 놀이처럼 절대 지우면 안 될 것을 분별하며 지워 나갑니다.” 시를 멀리한 시간이 길었기에 분별의 과정은 더욱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슬픔과 위로의 시인답게 이번에도 슬픔은 시집 전체를 아우른다. 시집의 출간이 늦었던 이유와 슬픔의 정서는 같은 곳에서 기원한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제가 시인이지만 이렇게 큰 슬픔을 직시하면서 이를 시로 쓸 수 있는 역량이 제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라앉기를 기다렸죠.”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출간한 박준 시인.  박윤슬 기자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출간한 박준 시인. 박윤슬 기자

시집의 시들은 격렬한 슬픔의 순간을 그리기보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본 뒤에야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수록시 ‘가나다라’에서 화자는 ‘나는 서른해 만에 가를 잃었고/라는 삼십일 만에 다 잃었다//라에게는 알지 못해 물을 수 없는 일이 있고/나에게는 선명함에 답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다’고 말한다. 상실과 그 자리를 매만지는 두 연의 사이에 긴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시인은 완벽히 정리하지 않는다. 그저 긴 시간에 걸쳐 자신에게 천천히 찾아온 상실의 아픔은 극명하고, 짧은 시간에 들이닥친 타인의 아픔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시인은 “감정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경계선을 긋자는 마음으로 시집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기다려도 그의 슬픔은 끝나지 않기에 간신히 시로 쓸 수 있게 됐을 때 적은 시들이라는 의미다. 물론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시도 있다. ‘몇 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블랙리스트’) 시인은 “하나의 시 속에 다양한 서사와 감정을 녹이고 싶다”며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가 자유롭게 느끼게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4부로 구성된 53편의 시가 끝난 후에는 한 편의 산문이 더해져 독자의 아쉬움을 달랜다. 제주와 제천, 군산, 동해 등의 지명으로 단락을 나눴다.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도 25만 독자에게 사랑받았으니 또 하나의 장기인 셈. “제 시를 보고 산문 같다고 하고 산문에는 또 시 같다고 합니다. 그래도 시인인지라 시는 내가 제일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크거든요. ‘산문은 이런 느낌인데 정말 다르죠?’하며 한 편 보여드린 거예요.”

시인은 제목이 된 시의 한 구절인 ‘마중도 배웅도 없이’에 대해 “마중과 배웅 모두 기다림과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다. 마중에는 기다림을 일찍 끝내고자 하는 기대가, 배웅에는 기다림을 늦추려는 아쉬움이 담겼다. 모두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 마중도, 배웅도, 애도도 사라진 사회는 슬프다”고 덧붙였다. 분명 모두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충분히 마음을 쏟고 있지 못하지만 박 시인의 독자들만큼은 그를 마중 나갔고 또 배웅하고 있다. 시인과 시인의 시 자체로부터 회복은 시작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시인은 독자들을 향해 고마움의 말을 남겼다. “세 번째 시집까지 ‘박준의 시’로 불리는 범위에서 열심히 보여드리려 노력했어요. 다음 작품에는 새로 주어진 백지에 조금 다른 것을 그려오겠습니다.”(웃음)

장상민 기자
장상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