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올해로 개교 120주년… 김동원 고려대학교 총장
AI와 지성 융합인재 육성위해
모든 학생에게 AI과목 필수로
IT교육관 신설 등 인프라 확장
7월에 K-클럽 콘퍼런스 개최
미래위한 연구 네트워크 마련
해외 유수 대학과도 교류진행
총장 취임 직후 문자 1000개
침체 · 도약에 대한 요구 많아
“고려대 업그레이드가 제 역할”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이한 고려대호(號)의 뱃머리엔 제21대 김동원 총장이 서 있다. 김 총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고려대를 2030년까지 ‘세계 30위권 대학’에 진입시키겠다고 공표했다. 장기적으로는 미래 사회에서 대학의 롤모델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대학’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김 총장은 고려대 개교 120주년 슬로건으로 ‘넥스트 인텔리전스(Next Intelligence)’를 내걸었다.
인공지능(AI)과 인간 지성을 융합한 인재를 길러내 고려대를 차세대 ‘거대 지능망’으로 만들겠다는 김 총장의 당찬 포부가 담긴 구호다. 2022년 12월 고려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김 총장을 최종 낙점했다. 이듬해 2월 그는 총장 취임사에서 “구글, 애플, 네이버, 삼성 등 에듀테크 기업이 대학이 해온 역할을 앞질러 수행하고 있다”며 세계적 기업을 대학의 경쟁 상대로 거론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명문대학의 수장으로서 이례적 행보다. 4년의 총장직 임기 중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취임 3년째를 맞은 김 총장. 그가 이끄는 개교 120주년의 고려대가 주목받는 이유다.
◇세상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형’ 인재 =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김 총장은 새로운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형 인재를 고려대의 새 인재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국내 대학 최초로 ‘AI 활용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지난해부터는 모든 학생에게 AI 과목을 필수로 듣게 할 정도로 AI에 대한 관심이 많다. AI 성능이 괄목할 만큼 발전하면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AI와의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지식의 유통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런 시대엔 고정된 지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학습 능력과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려대는 기능적인 지식인보다 선 굵은 리더들을 꾸준히 배출해 왔다”며 “수능 1~2점 높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잠재력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 학생들을 알아보고 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고려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의 이러한 교육 철학은 고려대의 연구·교육 환경 인프라 확장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월에는 ‘AI 컴퓨팅 센터’를 출범시켰다. 센터는 AI 연구의 핵심 인프라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4대를 보유하고 있어 연구자들이 AI 관련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3월에는 ‘정운오 IT 교양관’을 신설해 새로운 융복합 인재 산실의 탄생을 알렸다.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2만4400㎡(7400평)의 이 건물에서는 물리·생물·화학 실험실뿐 아니라 반도체 및 정보보안 분야 연구와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그 외에도 오는 5월에는 4만3900㎡(1만3300평)에 달하는 ‘자연계 중앙광장’을 착공한다. 고려대는 그 밖에도 인문관 신축 공사, 자연계 연구동 신축 공사 등 기존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리모델링에 나서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
◇“향후 10년 내 고려대 출신 노벨상 배출” = 세상을 바꾸는 인재를 배출함으로써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대학이 되고자 김 총장은 기후변화, 식량 문제, 고령화, 사회 양극화 등 주요 연구와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의 K-CLUB(K-클럽)은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위해 세계 석학을 하나로 묶은 연구 네트워크로, 현재 이에 속한 국내외 연구자는 100여 명에 달한다. 오는 7월에는 ‘K-클럽 콘퍼런스’를 개최해 미래 사회를 위한 국제공동연구 추진 전략과 특별 연구과제 및 관련 분야 네트워킹을 진행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총장은 향후 10년 안에 고려대 교우와 교수 가운데 노벨상, 필즈상, 튜링상 수상자를 배출하도록 지원하는 ‘KU-노벨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적 학자를 초청하고, 젊은 연구자들과 학술적 교류가 활발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해외 유수 대학과의 교류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 예일대와 함께 에너지·물·기후·기술혁신을 주제로 ‘고려대-예일 국제공동연구포럼’을 개최했다. 10월에는 1905년 같은 해에 개교한 중국 푸단(復旦)대, 싱가포르국립대와 함께 ‘S3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포럼’과 공동 연구 협약식을 개최했다. 또한 오는 7월에는 전 세계 주요 대학 연구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Climate Corps Program 2025’를 개최해 실질적인 기후 환경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 현재 100명 이상의 연구자와 학생이 참가 신청을 했다. 김 총장은 “고려대는 국가와 민족에 공헌하는 대학을 넘어 인류 미래에 공헌하는 대학이 되기 위해 인류 난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힘쓰려 한다”며 “인류 난제는 한 대학, 한 교수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 연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장을 고려대가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 위기를 극복하는 경영학자 = 김 총장은 줄곧 ‘경영학 외길’을 걸어온 학자다. 경영학 중에서도 ‘노사관계’라는 다소 특색 있는 세부전공을 선택했지만, 오히려 경영학에서 다루는 노사관계 논의는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동시에 인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시야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폭넓은 김 총장의 학문적 소양이 그의 리더십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총장은 국내외에서 노사관계학의 대표 학회인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을 지내고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경영학이 사람, 자본 등 자원의 연결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출하고, 관련돼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믿는 만큼 그는 자신이 걸어온 학문의 길과 대학의 경영도 이와 상통한다고 본다.
이런 철학을 견지한 학자답게, 김 총장은 사람을 만날 때면 늘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8년 동안 각 단과대학·학부, 교직원, 학생 등 1200명을 넘게 만난 것도 그의 성품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람에게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답을 찾는 그는 “총장 취임 날 이틀 동안 1000개 가까운 문자와 카톡, 전화가 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침체’와 ‘도약’이었다”며 “우리 학교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강한 열망이 담겨 있는 만큼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05년 민간에서 최초로 설립한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에서 출발한 고려대는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그간 고려대는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기, 민주화 시기 등 한국 현대사가 큰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양질의 인재를 배출해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
열강의 침탈을 받아 국토가 유린됐던 대한제국 시기에 고등교육기관 보성전문학교 개교는 의미가 컸다. 보성전문학교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은 전통 유학 지식으로는 더 이상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음을 깨닫고 ‘널리 인재를 길러 나라를 구하자’라는 건학 이념 아래 한국 최초로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했다.
보성전문학교는 1919년 3·1운동에도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자로 독립선언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은 보성전문학교의 경영자였다. ‘조선독립신문’의 사장 윤익선은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으로 3·1운동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학교 관계자가 항일운동 도중 투옥되는 등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한 뒤 안암동에 19만8300㎡(6만 평) 규모의 캠퍼스를 조성하고 본관을 건축하면서 1934년 안암동 시대가 시작됐다.

3·1운동 주도적 역할…‘민주화·선진국 도약’에도 앞장
■ 고려대 인재 배출의 역사
1945년 해방 이후 곧바로 이어진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는 산업화 시기에도 고려대는 지식인과 산업인 배출로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국산 자동차 포니 신화를 만든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 고려대 교우회장을 지낸 엘리트 행정가 장덕진 회장까지 수많은 고려대 졸업생들이 산업화 시기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고려대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도 기여했다. ‘4·18 고대생 의거’ 사건은 3·15 부정선거와 김주열 열사 피살에 분노한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어 4·19혁명의 결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날의 치열한 기록을 담은 ‘4·18 부상자 명단’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끈질긴 민주화 운동으로 1975년 4월에는 고려대만을 대상으로 긴급조치 7호가 선포되는 일이 일어나, 당시 총장이었던 김상협 전 총장이 물러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7년 6월항쟁에서도 고려대 학생회는 최선두에 섰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데에도 고려대는 중추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산업화의 성공을 이어받아 선진화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글로벌 기업의 탄생에도 고려대 출신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외환위기 당시 과감한 구조조정과 미래 기획력으로 삼성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 고려대 출신 졸업생들은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은 고려대는 과거의 역사처럼 미래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WE ARE THE NEXT’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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