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교 세종대 법학과 교수, 변호사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기각했다.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이다. 12·3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에 참석해 계엄 선포 결정에 관여한 공범이라는 게 주된 사유였다. 박 장관이 국회에서 발언한 후 자리로 돌아가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노려봤다는 부분도 포함돼 많은 사람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 29건의 탄핵안을 발의해 13건을 의결했다. 이 중 11건에 대한 헌재의 선고가 있었는데 10건이 기각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1건만 인용된 것이다.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10건은 100% 기각됐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미 탄핵이 기각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다시 탄핵하겠다고 으르고, 그다음 대통령 권행대행 순위자인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탄핵하겠다고 공언한다. 이쯤 되면 탄핵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헌법의 탄핵제도는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입법부인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 의결과 사법부인 헌재의 심판으로 삼권분립 원칙에 충실하고, 탄핵 사유도 정치적 문책이 아닌 헌법·법률 위반으로 엄격한 편이다.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상원에서 심판하는 미국의 탄핵제도보다 더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다. 1948년 헌법 제정 때만 해도 탄핵의 현실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대통령, 장관, 법관 등 고위 공직자가 심각한 위법을 저질러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 의결을 받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후 탄핵은 그다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제21대와 제22대 국회에서 탄핵은 폭증했다.
야당은 윤 정부 들어 탄핵이 정부를 공격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임을 알게 됐다. 특히,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소추된 공직자의 직무가 정지돼 정부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노렸다. 이동관·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안이 발의됐을 때 탄핵 사유가 없음이 명백함에도 직무정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소추안 의결 전에 두 위원장이 사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2인 체제로 간신히 운영하던 방통위에 방통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방통위원 1인만 남게 돼 기능을 상실하므로 의결되기 전에 사퇴해야 방통위 운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탄핵 소추된 공직자의 직무 배제는 일견 타당한 것 같다. 국회의 의결로 소추된 공직자에게는 심각한 헌법·법률 위반행위가 있었다고 전제되므로 그 공직자가 직무를 계속하게 함은 부적절하다는 게 상식일 터다. 그러나 민주당의 탄핵 남발로 그 상식이 무너졌다. 야당은 정치 공세로 탄핵이라는 무기를 휘둘렀고, 소추 의결만 되면 그 공직자는 사유와 무관하게 직무에서 배제됐다.
이런 사태를 막는 길은 자동적인 직무정지를 규정한 헌법 65조를 개정하는 것이다. 자동적인 직무정지는 제헌헌법에는 없었다. 당시에는 필요한 경우 탄핵재판소가 직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그러다가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서 자동적인 직무정지 조항이 도입돼 현행 헌법에 이른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제헌헌법이 옳았다. 추후 헌법 개정 시 직무정지에 관한 헌법 규정을 삭제하고, 헌법재판소가 직무정지를 결정하도록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탄핵 남용의 유혹을 줄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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