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사회부 차장

고려대·연세대 등 주요 의대에서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고 있다. 대다수 의대생이 복학 후 집단 제적 위기를 넘기자마자 다시 집단 수업 거부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의대 40곳 수업 참석률은 20% 미만이다. 교육부가 ‘내년 의대 증원 0명’의 전제 조건으로 건 ‘수업 정상화’엔 턱없이 못 미친다. 앞으로 유급생이 늘어나면 수업 복귀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대 학장들은 내년도 모집인원 동결을 조기 확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오는 20일 대한의사협회는 장외투쟁도 벌인다. 새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힘 빠진 과도기 정부를 몰아붙여 의료개혁을 무산시키겠다는 모양새다.

정부가 열어준 퇴로는 사태를 꼬이게 만들고 있다.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대입 정책 안정성은 단숨에 무너졌다. 대책은 정교하지 못했다.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대응책은 내놓지 않았다. 과정은 투명하지 않았다.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의료계와 비공식적으로 의대 정원을 논의하면서 다른 부처와 협의 없이 ‘내년도 증원 0명’을 꺼냈다. 국회에서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법안이 다뤄지는 와중에 정부가 먼저 숫자를 건드린 것이다. 정부가 증원 정당성과 협상력을 스스로 약화시킨 셈이다. 결국, 의대 증원은 의대생 수업 복귀에 따라 결정되는 정책으로 전락했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은 ‘1년짜리 이벤트’가 됐다.

원칙 훼손은 불복을 불러왔다. 원칙을 저버린 정부 얘기가 먹힐 리 없다. 의대생들은 “1년 내내 마지막 기회냐”면서 정부를 비웃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 1년간 의대생들을 복귀시키기 위해 학칙에도 없는 ‘특례’를 남발한 탓이다.

숱한 양보가 사태 해결을 힘들게 만든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내년 의대 모집인원 확정을 앞두고 의대생 유급만이라도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의료단체장은 “학생 신분인 의대생만큼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보호받는 게 순리다. 의대생들은 학생 신분을 방패 삼아 휴학 인증, 수강 신청 방해 등 온갖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 의대 증원 혜택을 받은 신입생들은 마지막 배를 탄 후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특혜를 자꾸 받기만 하다 보면 권리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집단 수업 거부가 불법이라면 집단 유급이 맞다. 언제까지 특혜를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학칙을 다르게 적용받는 건 공정치 않다. 교육적이지도 않다. 교육부는 의대생만을 위한 ‘의대교육부’가 아니다. 학교부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상식은 무너지게 된다. 다른 직역 젊은 세대가 ‘탕핑(드러눕기)’하면 그땐 어떤 명분으로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묵과한다면 의대 정원을 두고 2030년까지 의료계 집단행동이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의대 정원 3058명도 ‘성역’으로 남게 된다. 의료개혁은 온 국민이 지지하는 정책이다. 원칙을 버렸는데 사태마저 해결 못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해법이 꼬일 때는 원칙만이 답이다.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기자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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