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불닭볶음면과 수염문화

“불닭볶음면이 신라면보다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가 불닭볶음면의 현지 인기에 놀란 나에게 갑자기 퀴즈를 내듯 물어본다. 글쎄… 매운맛 때문인가? 마케팅을 잘해서? 현지인 입맛에 잘 맞아서?
한국에서는 단연코 신라면이 라면의 대명사다. 국물의 얼큰함과 적당한 매운맛은 수십 년간 국민 입맛을 사로잡아 왔다. 그런데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세계의 라면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건 ‘불닭볶음면’이다. 유튜브 먹방부터 해외 마트의 라면 코너, 온라인 챌린지 영상까지 불닭볶음면은 명실상부한 K-라면의 글로벌 대표주자가 되었다. 왜 ‘불닭볶음면’일까.
“수염 기른 사람이 많아서 그래.”
세계 시장에서 불닭볶음면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가 매운맛이나 마케팅 때문만이 아니라 수염문화 때문이라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접근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서구와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수염이 남성성이나 신앙, 전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며 길게 기르거나 두껍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권에서 뜨거운 국물 요리는 번거로운 존재다. 국물이 튀어 수염에 묻기 쉽고, 한번 묻으면 닦기도 까다롭다. 실제로도 이들 지역에서는 국물 요리보다 소스나 기름에 볶아낸 음식, 빵에 찍어 먹는 형태의 음식이 발달해 왔다. 불닭볶음면은 국물이 없으니, 수염을 신경 쓸 필요도, 숟가락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포크 하나면 충분하다. 생각보다 사소해 보이는 이 점이 낯선 음식에 다가서는 문턱을 훌쩍 낮춰 준 셈이다.
수염을 통해 다시 보게 된 국물 문화는 식문화 차이를 만드는 또 다른 핵심 요소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처럼 ‘연수(soft water)’가 풍부한 지역에서는 맑고 깨끗한 물을 이용한 국물 요리에 유리하다. 반면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등 많은 지역은 ‘경수(hard water)’ 지역이다. 이런 물은 장시간 끓이면 국물이 탁해지거나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치기 쉬워 국물 요리에 불리하다. 자연히 이 지역에서는 스튜, 볶음요리, 소스 중심의 요리가 발달했다.
문화적 거리감도 한몫한다. 국물이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라면 한 그릇조차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숟가락을 써야 할지, 그릇을 들어야 할지, 국물을 모두 마셔야 하는지도 애매하다. 같은 국물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국물 요리를 다 마시는 한국 식문화에 놀란다고 한다. 같은 국물 문화권에서도 이러한데,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그 거리감이 얼마나 클까? 그런 면에서 불닭볶음면은 일반 라면보다 훨씬 친근한 요리법이다. 불닭볶음면은 국물이 없는 대신, 세계인과의 거리도 함께 덜어냈다.
불닭볶음면의 세계적 인기는 단순히 ‘먹기 편해서’는 아니다. 유튜브 챌린지로 시작된 ‘재미’, 혀를 마비시키는 ‘매운맛’, ‘한류’에 대한 호감. 거기에 ‘국물 없는 라면’이라는 친숙한 방식까지 더해졌기에 오늘날 K-푸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음식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문화적 코드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불닭볶음면 다음 주자는 어떤 문화적 코드와 함께 등장할까. 그 열쇠는 어쩌면 또 다른 ‘사소한 차이’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스푼 더 - 경수-연수 차이
‘연수(soft water)’와 ‘경수(hard water)’는 물속에 녹아 있는 칼슘(Ca2+)과 마그네슘(Mg2+) 이온의 농도에 따라 나뉜다. 미네랄 함량이 높으면 경수, 낮으면 연수로 분류된다. 연수는 단백질, 채소, 해산물 등에서 우러나오는 풍미를 깔끔하게 받아들여 국물의 감칠맛을 섬세하게 살려준다. 반면, 미네랄이 많은 경수는 다소 떫거나 금속 맛이 날 수 있으며, 국물을 탁하게 만들거나 재료 본연의 맛을 흐릴 위험도 있다. 또한 경수를 자주 쓰는 지역에서는 정수기나 주전자에 하얀 석회질 물때가 쉽게 생기는데, 이는 칼슘이 뜨거운 온도에서 침전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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