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암살된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저격당한 지 하루 만인 4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남북전쟁(1861∼1865)은 미국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북부 출신의 링컨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노예제도가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남부는 높은 수준의 산업화와 경제력을 갖춘 북부와 달리, 농업과 작물 재배가 주를 이루고 있어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 노동력의 기반이 바로 노예였다.
1861년 남부 연합군의 선제공격으로 남북전쟁이 점화됐다. 전쟁은 길고 가혹했다. 사흘 꼬박 전투가 계속된 게티즈버그에서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 전세에서 밀리던 남부군은 1865년 리치먼드 전투에서 백기를 들었다.
남북전쟁은 진정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노예 해방은 남북전쟁의 명분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단골 메뉴다. 링컨은 정말 노예 해방을 제일의 목표로 여긴 정치 지도자였다?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링컨이 전적으로 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주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문’을 통해 외교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남부의 모든 노예는 1863년부터 자유의 신분이 된다고 선언했다. 목적은 남부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흑인 노예들에게 이 선언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북부 대통령의 선언을 남부 연합군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컨에게는 노예 해방보다 분리된 미국을 다시 통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에게 노예제 폐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는 사안일 따름이었다. 링컨의 마음은 언제나 다수의 지지, 연방 유지에 있었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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