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리아’ 내일 개봉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20세기 오페라 시장을 부흥시킨 최고의 디바로 꼽힌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리아’(감독 파블로 라라인)의 타이틀 롤은 할리우드 톱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당대 최고 디바와 톱스타의 캐스팅 조합이라는 측면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화려함에서 일맥상통해 보이는 두 인물의 이미지만으로 ‘마리아’를 택했다가는 당황하기 십상이다. 이 영화는 전성기 시절 마리아의 빛이 아니라, 외로웠던 말년 시절 마리아의 그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50대에 접어든 마리아는 프랑스 파리의 저택에서 집사와 가정부,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와 살아간다. 목소리를 잃은 그는 다시 무대에 설 날을 기대하지만, 이미 자신의 목 상태를 아는 터라 젊은 시절 부른 노래가 담긴 앨범조차 듣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마리아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약물에 의존한 채 노래 부르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는 두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마리아의 어머니와 마리아의 연인인 ‘선박왕’ 오나시스다. 독일 점령 체제 아래, 마리아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어린 딸에게 노래 부르길 강요한다. 오페라 스타로 거듭난 후 그가 만난 오나시스는 정반대였다. 소유욕이 강한 오나시스는 마리아를 곁에 두면서도 정작 그가 노래 부르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의 형태가 다른 억압은 마리아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오페라는 내가 나를 위해 노래하는 유일한 무대다. 내가 무대에 서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내 인생이 오페라이기 때문”이라는 마리아의 말을 통해 오페라는 그에게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이유’임을 알 수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립감 속에 메말라가는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졸리의 연기는 사실적이다.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채 냉소적인 표정을 짓지만, 정작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 마리아의 말년을 온몸으로 웅변했다. 전성기 시절 마리아의 노래를 틀고 졸리가 립싱크하는 방식으로 촬영했지만, 7개월간 성악 훈련을 받은 졸리의 몸짓과 호흡은 마리아의 노래와 썩 잘 어울린다. 특히 영화 말미, 마리아가 창가에 서서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장면은 그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이라이트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재키’(2017), ‘스펜서’(2021)에 이어 20세기 현대사를 대표하는 여성 3부작을 ‘마리아’로 마무리한다. 앞서 J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 직후의 재클린 케네디(재키), 영국 찰스 왕세자와의 이혼을 결심하게 된 다이애나 스펜서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에 초점을 맞췄던 라라인 감독은 ‘마리아’에서도 그의 마지막 일주일을 다루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졌던 처절한 삶의 민낯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나시스는 오랜 연인이었던 마리아를 버리고 재키와 결혼하는데, 마리아는 이 소식을 신문 기사로 접한 후 큰 충격을 받는다. ‘마리아’에 재키가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오나시스의 병문안을 간 마리아가 재키를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라라인 감독이 이 3부작을 마무리하며 찍은 인장과도 같다. 16일 개봉.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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