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고 영화’ 밀어내기 끝… 극장가 ‘개봉작 보릿고개’ 조짐
‘소방관’ 등 손익분기 돌파 불구
‘보고타’ · ‘브로큰’ 대부분 적자
‘거룩한밤’·‘바이러스’ 외에는
5월 황금연휴 공략할 작품 없어
내년부터 ‘기근’ 본격화 가능성
“팬데믹의 저주, 지금부터 시작”

“이제는 곳간도 비었어요.”
최근 만난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한동안 개봉이 미뤄졌던 일명 ‘창고 영화’들이 쏟아지며 영화 시장을 근근이 지탱했는데, 이제는 이조차도 없다는 푸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객 감소, 수익 저하에 따른 투자 축소, 이로 인한 공급 부족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셈이다. 충무로 관계자들이 “팬데믹의 저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최근 ‘창고 영화의 역습’이라는 보도가 잦았다. 지난해 영화 ‘소방관’(385만 명), ‘말할 수 없는 비밀’(82만 명)에 이어 지난 13일 ‘승부’(180만 명)까지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나온 반응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크랭크업한 지 2∼4년 만에 극장에 걸렸던 ‘보고타:마지막 기회의 땅’(42만 명), ‘브로큰’(19만 명),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11만 명), ‘스트리밍’(10만 명), ‘귀신경찰’(5만6000명) 등은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 즉 수익을 내지 못하고 손해 본 창고 영화가 훨씬 많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영화 위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니 마치 창고 영화가 성공의 기준이 된 것처럼 잘못 포장됐다.
더 큰 문제는 극장이 멈춰 서는 것을 막아주던 창고 영화마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3년만 하더라도 제작된 후 개봉일을 잡지 못해 표류하던 영화가 100편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곶감 빼먹듯 적은 홍보마케팅 비용을 들여 공개하다 보니 관객들이 개봉했는지 여부도 알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더 스크린의 박혜은 편집장은 “팬데믹 전후 제작된 작품은 3∼4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개봉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시의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라며 “지금은 팬데믹 시기 만들어진 영화들이 다양한 경로로 공개되는 시기라면, 내년부터는 진짜 보릿고개가 시작될 수 있다. 만들어놓은 영화가 바닥났다는 소문이 관객들에게 알려질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향후 눈에 띄는 창고 영화는 4월 말 공개되는 ‘거룩한 밤:데몬 헌터스’와 5, 6월 각각 개봉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와 ‘하이파이브’ 정도다. 배우 마동석이 제작하고 주연으로도 참여한 오컬트물인 ‘거룩한 밤:데몬 헌터스’는 2021년 첫 삽을 뜬 작품이다. 배우 배두나·김윤석이 참여한 ‘바이러스’는 2019년 제작 소식이 전해진 후 무려 6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써니’·‘과속 스캔들’로 유명한 강형철 감독이 연출한 ‘하이파이브’는 “잘 나왔다”는 입소문이 돌았으나 주인공으로 참여한 배우 유아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며 개봉일이 미뤄졌다. 매달 2∼3편씩 극장에 걸리던 창고 영화의 개봉 편수가 1편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창고 영화가 메우던 빈자리를 채울 신작도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내 개봉 스케줄을 살펴보면 5월에 공개되는 장편 한국 상업영화는 ‘바이러스’뿐이다. 비교적 신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배우 이혜영이 출연한 ‘파과’ 정도다. ‘거룩한 밤:데몬 헌터스’와 같은 날 공개된다.
과거 5월은 극장가에서 관객 동원이 유리한 기간으로 분류됐다.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등 공휴일이 많고 가정의 달에 맞춘 다양한 프로모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5월 6일이 대체공휴일이 되면서 나흘간의 연휴가 생겼다. 5월 2일 휴가를 쓰면 노동절까지 포함해 장장 엿새의 연휴다. 하지만 이 기간을 공략할 만한 신작을 찾기 어렵다.
이 여파는 5월 개막하는 칸국제영화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한국 영화가 12년 만에 경쟁·비경쟁 부문 통틀어 1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과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이 출품됐으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투자 감소로 신작이 현저히 줄어드니 해외 시장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 편집장은 “신작을 준비한다는 소식조차 예년과 비교하면 5분의 1∼10분의 1 수준만 들린다”면서도 “다만 하반기 박찬욱, 나홍진 감독의 규모 있는 신작이 개봉된다. 기대작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들이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조심스럽게 기획하던 작품들이 실제 제작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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