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우의 Deep Read - 권력구조 개헌의 제문제
이원정부제는 제도적 권력분산책 못되고… 양당제 하 내각제는 여대야소 대통령제와 비슷
‘4년 중임+대선·총선 동시선거’ 개헌 최악… 권력독점 정치문화 극복·다당제 정착이 급선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권력 독점의 폐해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대통령제에서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독점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분산 권력구조
권력 독점을 손쉽게 해결하는 방안은 권력 분산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대안적 체제로 ‘분권형 이원정부제’나 ‘내각제’가 제시된다. 이원정부제는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독립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분산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적 구상과 다르다.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뽑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이 내정한 인물이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종속된 위상의 국무총리가 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국회가 뽑은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다른 정당 출신이 되고, 특히 경쟁적인 양당제라면 대통령과 심각한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외치를 관할하고 국무총리는 내치를 책임지는 권력 분산 구도를 구상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구분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보듯이 대통령의 외교와 무역 정책이 국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원정부제를 택하고 있는 프랑스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통령 소속 정당이 야당보다 국회 의석이 많은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전권을 가지며, 반대로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국무총리가 주된 권력을 갖는 동거정부(cohabitation)의 형태가 된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권력 분산이 순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원정부제는 결국 제도적인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의회를 지배하는 정당에 따라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로 달라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의원내각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국민 정서와 별로 맞지 않는다. 내각제의 치명적인 단점은 총리에게 부여된 의회해산권으로 인해 의원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리는 정치적 불만이 있을 때 의회해산권을 무기로 상대를 협박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국회가 해산되고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하는 정국의 불안이 의원내각제의 단점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
거대 양당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의 의원내각제는 여대야소의 대통령제와 다를 것이 없으며, 의회해산권만 권력자에게 부여하게 된다. 다당제 상황에서는 한 정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나, 과거 DJP연합에서 경험한 것처럼 정당 간 지속적 협력은 어렵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히 높은 국민 정서상 국회가 모든 권력을 갖는 제도를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개헌 내용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대선·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헌이 대통령의 권력 독점을 막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대통령의 권력 독점이라는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은 현재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중임이 가능하게 되면 현직 대통령은 4년 후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극히 크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1945년 이후 미국 대통령 15명 중 출마를 포기한 사례는 해리 트루먼(1952)과 린든 존슨(1968) 대통령 단 2명뿐이고 13명은 재선에 도전했다. 즉 자칫 ‘4년 중임 대통령제=8년 임기 대통령제’로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4년 중임제 목소리가 크게 나오는 이유는, 4년 중임제에서 초선 대통령은 재선을 의식해 야당과의 협력 정치를 펼칠 수 있지만 5년 단임제에서는 차기 선거에 또 나서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독단적 정치를 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반대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내다본다. 즉 대통령의 최대 목표는 재선에 있으므로, 대통령은 소속 정당을 압박해서 대선 후보로 공천받고 현직에 있으면서 권한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더욱이 재선된 이후 대통령은 차기 선거의 부담이 없으므로 단임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단정치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대통령의 ‘옷자락효과’
이와는 별개로 ‘대선-총선 동시선거’를 제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잦은 전국 단위 선거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대통령의 권한 집중을 더 강화하게 된다. 동시선거를 치르면 유권자들의 관심은 주로 대선에 쏠리게 된다. 이에 따라 유권자들은 자신이 뽑은 대선 후보와 같은 정당의 총선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옷자락효과(coattail effect), 소위 후광효과다. 즉 대선이 총선을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고 소속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종속이 심해진다.
동시선거와 중간선거를 시행하는 미국 선거제도는 한국과 다르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고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다. 따라서 동시선거 때는 대통령과 하원의원을 같은 날 뽑지만, 2년 후 중간선거에서는 2년 임기의 하원의원만 선출한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전통적으로 대통령 정당이 의석을 잃는다. 옷자락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시선거 때 당선된 대선 후보의 인기 덕분에 같은 당 하원의원들이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지만, 하원 선거만 치르는 중간선거 때는 옷자락효과가 사라지고 의석을 잃는 여당 의원이 다수 발생한다. 4년 임기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매번 함께 치른다면 대통령은 늘 자당 소속 의원들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대선-총선 동시선거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운동의 주도권을 가진 대선 후보가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해질 거라는 점이다.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천 잡음이 없어야 하고 대통령과 팀을 이룰 수 있는 단일대오의 인물들이 공천돼야 한다고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선 후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공천 대상자들은 대선 후보에게 충성 경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갈 길 먼 대통령 권한 축소
결국 미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4년 중임제 도입과 대선-총선 동시선거는 정당이 대통령에게 더욱 귀속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대야소가 일반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렇게 되면 개헌의 목적인 대통령 권한 분산이 권한 강화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권력 독점의 정치문화를 극복하면서 다당제 정착을 위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일이 급선무다.
서강대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용어 설명
‘동거정부’, 즉 cohabitation은 주로 프랑스의 권력분산형 이원정부제에 등장하는 정부 형태. 대통령이 속한 여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다를 경우 구성되는 동거 형태의 연립정부를 말함.
‘옷자락효과’, coattail effect는 미국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가 같은 정당 의원들을 동반 당선시키는 효과. 그러나 임기 2년의 하원의원 선거만 따로 열릴 땐 옷자락효과 소실로 의석수가 감소.
■세줄 요약
권력분산 권력구조 : 권력 분산을 위한 방안 중 ‘분권형 이원정부제’는 제도적인 권한 분산책이 되지 못함. 또 내각제는 정국 불안 요인이 됨. 특히 거대 양당제 아래에서의 내각제는 여대야소의 대통령제와 대동소이.
4년 중임 대통령제? :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4년 중임 대통령제.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독점이라는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4년 중임제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자칫 8년 독주의 대통령제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함.
옷자락효과 : ‘4년 중임+대선·총선 동시선거’ 개헌은 옷자락효과로 인해 정당과 의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귀속을 강화할 것. 대안으로 권력독점 정치문화를 극복하면서 다당제 정착을 위한 제도 개혁을 하는 게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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