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Economy - 트럼프 정책 기저 ‘미란 보고서’ 예측 빗나가나
트럼프 경제책사 미란의 설계
국채금리 치솟는 등 부작용만
경상수지 적자 0 만들려는 시도
결국 기축통화 역할 못해 모순
제조 인력양성에 교육 필요한데
훈련 책임질 교육부 해체도 의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강력한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간)에는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달 들어 2일에는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고, 3일부터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5일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중 기본관세 10%를 부과했고, 9일에는 상호관세 중 국가별로 차등적용되는 개별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미 국채금리 급등 등 부작용이 나타나자 상호관세(기본관세 10% 제외)를 90일간 유예하고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과 협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대신 대미 보복에 나선 중국에 대한 관세는 145%까지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서는 상호관세(25%) 협상에 무역과 관세, 비관세 장벽, 방위비분담금 등을 원스톱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저에는 경제 책사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의 보고서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가 깔려있다.
◇‘트리핀의 딜레마’에 빠진 미 경제…미란의 해결방법은 관세와 약달러 =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미란 위원장은 글로벌 투자회사 허드슨베이캐피털 수석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11월 41쪽 분량의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를 내놓았다. 미란 위원장은 미국이 빠져있는 트리핀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관세와 함께 약달러를 제시했다. 트리핀의 딜레마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로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안게 된 문제를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가 지적한 것이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자 각국은 대미 수출을 통해 국제거래 결제를 위한 달러 확보에 나서게 됐고, 이로 인해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늘어나게 된다. 대부분 무역 불균형은 환율로 조정되는데 문제는 달러가 기축통화이다 보니 수요가 끊이지 않아 강달러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강달러는 대미 수입품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미국 제조업을 붕괴시키고 이는 미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 미란 위원장의 지적이다. 미란 위원장은 이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관세와 약달러를 내세웠다. 관세 부과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기축통화 위치를 유지하면서 달러의 가치를 낮추기 위한 제2의 플라자 합의,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제안했다.

◇예상보다 악화한 시장…마러라고 합의 실현 가능성도 물음표 =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보면 미란 위원장의 보고서와 유사하게 진행됐다. 각국에 관세 압박을 가해 양보를 이끌어 내고, 동맹국에 무역·안보를 연계한 원스톱 협상을 압박하고, 중국에 강력한 관세 위협을 통해 협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미란 위원장 보고서가 예측한 것보다 더 나쁘게 흘러갔다. 미란 위원장은 보고서에서 “시장은 과도한 변동성에 취약하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관세의 지속적 영향 여부이며,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초기 시장 반응은 시간이 지나면 완화되거나 반전된다”며 금융시장 충격이 단기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미 경기 침체 우려 확산에 증시의 하락폭은 갈수록 커졌고, 미 국채 투매 현상이 일어나며 국채금리가 치솟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란 위원장이 간과한 또 다른 문제는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이다.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것과 반대로 막대한 자본수지 흑자를 기록 중이다. 각국은 대미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은행에 입금하는데, 외국 투자자들은 이 달러를 이용해 미국 국채와 주식 등을 매입한다. 경상수지 적자를 없애려 하면 자본수지 흑자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0으로 만든다는 것은 다른 국가들이 국제 결제에 사용할 달러를 확보하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를 국제 결제에 사용하지 않은 국가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결국 달러 공급을 줄이겠다면서 기축통화로 달러를 사용하라는 모순에 빠진 셈이다.
미란 위원장이 제2의 플라자 합의로 내세운 마러라고 합의도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과 일본, 프랑스, 서독, 영국 등 5개국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일본과 서독의 통화 가치를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무역적자 폭을 다소 줄였지만 일본은 장기적인 불황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당시 플라자 합의는 냉전 시대에 미국과 동맹국 간에 이뤄진 것이지만, 마러라고 합의를 위해서는 미국은 유럽, 아시아 동맹국뿐 아니라 패권 경쟁국인 중국도 끌어들여야 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 경제가 고꾸라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여러 방안을 연구해온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 중국은 미국에 대한 관세를 125%로 올리며 관세전쟁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티브 행크 미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교수는 포천지에 “관세 정책과 달러 평가절하 정책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며 “마러라고 합의는 쓰레기통에 적합하다”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책도 관세 정책과 충돌…제조업 부활 의문 = 미란 위원장의 보고서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미국 제조업 부활이다. 미란 위원장은 보고서 초반에 ‘철강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적시했다. 관세로 제조업을 되살려 궁극적으로는 국가 안보를 증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반에 한 일은 교육부 해체 행정명령에 서명한 일이다. 제조업 인력 양성에 필요한 교육 및 직업 훈련을 책임질 부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벤 노턴 지오폴리틱스이코노미 창립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정책의 기본 틀마저 무너뜨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을 공격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는 제조업 부활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혜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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