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선 ‘알래스카 풍경’, 160×130㎝, 한지, 닥원료, 2024.
구민선 ‘알래스카 풍경’, 160×130㎝, 한지, 닥원료, 2024.

인공지능(AI) 전시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전시장 유리창에 특이한 느낌의 그림들이 비쳐서다. 구민선 작가의 닥지 그림이다. AI로 인해 미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까 머릿속이 복잡했던 차에 어떤 관계성이 영감으로 다가왔다. 인공과 자연의 대비. 미래형 첨단기술과 사람(손)의 대비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AI 시대에 닥종이 그림이라니,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안에서 재래식 온돌방을 만난 느낌이다. 닥지와 닥 펄프 재료에서 무언가 따듯함과 구수한 맛이 난다. 게다가 손이 무수한 지문을 남긴 투박하면서도 감각적인 마티에르의 아우라도 인상적이다. 노동을 넘어선 몰아의 경지가 엿보인다.

완전 표백 혹은 정제되지 않은 닥지, 두툼하면서도 요철이 많은 마티에르의 닥 펄프.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보인다. 기교를 절제하면서 대상을 개성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이국 풍경도 친숙하게 만든다. AI가 발달할수록 보완적인 것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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