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전국부장
지난달 말 서울 면적의 80%에 달하는 4만7946㏊를 화마(火魔)의 영향권으로 몰아넣으며 31명의 사망자, 3546명의 이재민을 낳은 영남 산불은 우리나라 산불이 다른 단계로 올라섰다는 점을 보여줬다. 누군가의 실수로 만들어진 불씨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울창한 산림을 동시다발로 집어삼켰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초대형 ‘괴물 산불’ 앞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가 내리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영화와 뉴스에서만 보던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제 이상기후의 일상화로 인해 강풍과 건조한 날씨는 수시로 닥칠 수 있다. 괴물 산불이 다음 달에 들이닥칠지, 내년 봄에 또 발생할지, 그곳이 강원도일지, 제주도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번 산불은 새로운 재난에 대응하는 우리 역량이 역부족이라는 점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60∼70대 고령자로 구성된 저임금의 산불진화대, 낡고 부족한 진화 헬기 등 손봐야 할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임도(林道) 문제는 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임도는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산불 진화 임도는 폭 3.5∼5m 정도가 돼야 산불 진화 차량이나 진화 인력이 투입될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임도를 산불관리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일본도 2004년부터 산불 예방을 위한 방화 임도 정비 사업을 펼쳐 꾸준히 임도 길이를 넓혀 왔다. 하지만 우리는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매우 더딘 상황이다. 한국의 임도 밀도는 ㏊당 4.3m로 일본(24m), 독일(54m)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20년부터 조성된 한국의 산불 진화 임도는 856㎞에 그치고 있다. 국토 면적의 60%가 산림이고 침엽수림이 약 50%를 차지해 우리나라와 산림 환경이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핀란드는 12만㎞ 이상의 임도를 갖추고 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소 필요 임도 밀도는 6.8m로 1만6000㎞ 시설이 필요하다.
임도 확대를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임도를 위해 나무를 깎으면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둘째, 임도를 타고 바람이 더 강하게 번질 수 있다는 점, 셋째, 불에 잘 타는 소나무 식생이 문제인 만큼 활엽수로 교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수의 산림 전문가는 기우 또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보고 있다. 무차별적 벌목은 분명 산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산림청은 임도 공사 시 산사태에 대비한 배수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북극권의 강풍에 늘 노출된 핀란드에선 임도가 산불 확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매년 10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는데도 산불 피해 면적은 건당 0.4㏊에 불과하다. 산이 개인 사유재산인 경우가 많은 한국에선 다수의 산주(山主)가 고수익의 송이 재배를 위해 소나무 식생을 선호하는 것도 환경단체의 바람과 어긋나는 지점이다. 나무를 자르는 것은 산림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나무를 베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친환경 산림 정책이다. 이번 영남 산불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 환경단체가 임도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괴물 산불 시대의 대책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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