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실내대회 3연속 우승…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

 

목말 태워준 라이벌 해미시 커

이게 스포츠맨십이구나 감명

 

이달 브랜드 런웨이 모델 경험

내게 ‘긴장감’이란 에너지 줘

 

나는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

몇번 고비겪고 올라갈일만 남아

선수로서 경기력으로 입증할 것

높이뛰기선수 우상혁이 지난 8일 충북 진천선수촌 육상장에서 유연성 강화를 위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진천=문호남 기자
높이뛰기선수 우상혁이 지난 8일 충북 진천선수촌 육상장에서 유연성 강화를 위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진천=문호남 기자

진천=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

“버킷 리스트 하나 풀었으니 이제 남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메달 따야죠.”

높이뛰기선수 우상혁은 지난 3일 서울 잠실 한강공원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2025 여름 컬렉션 행사(사진)에 모델로 참여했다. 이날 행사는 전문 모델 외에 우상혁과 펜싱선수 오상욱, 가수 박효신, 정용화, 배우 위하준 등이 당당히 런웨이에 올라 화제가 됐다.

188㎝의 큰 키에 67∼68㎏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우상혁은 연초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잠시 휴식하는 기간을 활용해 모델로 변신했다. 어쩌면 ‘부캐’가 될지 모르는 모델로 잠시 일탈했던 우상혁을 지난 8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본캐’인 높이뛰기선수로 만났다.

런웨이에서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상을 입고 멋짐을 뽐냈던 우상혁은 다시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었다. 차림새는 달라졌지만 밝게 웃는 얼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낯선 모델 경험에 대해 묻자 “모델은 내 버킷 리스트였다”며 “오랜만에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리우 올림픽 때 2m29에 도전했던 3차 시기 이후 처음 심장이 요동쳤다”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우상혁은 모델 경험에서 느낀 긴장이 다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됐다고 했다. “주변에서 모델 데뷔를 했다고 하는데 분명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중에 또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긴장감이 좋은 에너지가 될 것 같다”는 우상혁은 “모델이라는 버킷 리스트를 경험했으니 이제 남은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우상혁은 코로나19 여파로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선수 최고 성적인 4위를 달성했다. 이후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우승, 실외육상선수권대회 준우승으로 세계적인 높이뛰기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파리올림픽서는 아쉬운 성적에 그쳤다.

아쉬움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운동화 끈을 질끈 묶은 우상혁은 연초 출전한 실내대회에서 우승했다. 반등을 노리는 우상혁에겐 가장 확실한 ‘청신호’가 됐다. 우상혁은 지난 2월 열린 2025 세계육상연맹 인도어 투어 후스토페체 대회와 반스카비스트리차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했다. 기세를 몰아 지난달에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2025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2m31을 넘어 우승했다. 실내대회 3연속 우승이자 3년 만의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정상 탈환이다.

특히 난징에선 오랜만에 우승한 우상혁을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해미시 커(뉴질랜드)가 목말을 태우며 축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상혁과 커는 1996년생 동갑내기다.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난다는 둘은 단순히 기록을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니라 우정을 나누는 동행으로 지낸다.

우상혁은 “같이 점프를 하며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다”며 “우승을 확정하고 세리머니를 하는데 ‘매트 위로 올라가라’고 해서 무슨 소린가 했더니 자기 어깨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초등학교 이후론 목말을 처음 탄다. 커의 키(198㎝)가 커 정말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렇게까지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스포츠맨십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연초 일정을 마친 우상혁에겐 잠깐의 휴식이 전부다. 오는 21일 국가대표 선발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는 5월 경북 구미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9월 일본 도쿄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연이어 열린다.

우상혁은 “나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파리에선 생각만큼 잘 뛰진 못했지만 도쿄에서 다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올림픽 때만큼 세계선수권에서도 잘 뛰고 싶다”고 했다.

다시 시상대에 오른 우상혁은 멋지게 비상하는 미래를 꿈꾼다. 스스로 ‘항상 동기부여가 필요한 선수’라고 평가하는 우상혁은 “선수라면 경기력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이 끝나고 ‘지원도 줄 것이고 나이도 먹었으니 우상혁도 끝났다’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 소리가 자극이 됐다. 그래서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경기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소문이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자신의 우승 비결을 소개했다.

우상혁은 기록과 싸우는 자신을 파도에 비유했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높이를 ‘높은 파도’가 넘어설 때가 있는가 하면, 기대만큼 높지 않은 ‘낮은 파도’를 넘지 못하기도 하는 만큼 열심히 준비하되 결과에 순응하고 따르겠다는 의미다. 우상혁은 “파리올림픽에선 파도가 내려왔으니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도쿄올림픽에선 4등을 했으니 이번엔 목표를 크게 잡고 파도가 위로 솟구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점프가 너무 좋다”는 우상혁은 “높이뛰기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체중 관리도 잘했다. 지금처럼만 관리한다면 기록도 유지하고 부상도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올 거라 생각한다. 부상이 오지 않는 한 즐겁게, 행복하게 점프를 하겠다. 우상혁의 점프는 실패가 찾아오기 전에 끝을 보겠다”고 당차게 자리를 일어섰다.

오해원 기자
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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