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강릉 옥계항 마약 유입

 

해경청·관세청 합동수사본부

주요국 정보당국과 긴밀 공조

노르웨이 국적의 벌크선 급습

 

멕시코·에콰도르·파나마 거쳐

韓서 마약 하역후 페루行 시도

당국, 국내유통 구매책 찾는중

 

AI 활용 위험화물선별 강화 등

동남아·남미 마약 차단 총력전

지난 2일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서 동해지방해양경찰청과 서울본부세관으로 구성된 합동검색팀 마약수사요원들이 노르웨이 국적의 한 선박에서 적발한 코카인 의심 물질 2t을 지상으로 내리고 있다.  동해해경청 제공
지난 2일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서 동해지방해양경찰청과 서울본부세관으로 구성된 합동검색팀 마약수사요원들이 노르웨이 국적의 한 선박에서 적발한 코카인 의심 물질 2t을 지상으로 내리고 있다. 동해해경청 제공

전세원 기자, 인천=지건태 기자, 강릉=이성현 기자

올해 1월 출범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펜타닐 등 각종 마약의 유입을 차단할 목적으로 국경 통제를 강화하자, 우리나라 세관 당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 판로가 막혀버린 남미의 마약 카르텔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국내에 정박한 외국 무역선에서 시가로 1조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2t)의 코카인 의심 물질이 세관 당국과 해양경찰에 적발돼 마약 청정국이라는 자부심을 품던 대한민국이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 2022년 10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세관 당국은 각종 첨단 장비를 접경지역과 단속현장에 배치한 데 이어 범부처를 초월해 미국 등 주요국의 수사·정보당국과도 긴밀히 공조해 마약 밀반입 시도를 국경단계에서 원천 봉쇄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16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동해지방해양경찰청과 서울본부세관이 공동으로 구성한 합동수사본부는 코카인 의심 물질 2t이 담긴 박스 57개를 싣고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 들어왔다가 지난 2일 적발된 노르웨이 국적의 A 선박에서 수상한 GPS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당국은 해당 GPS를 분석하며 이번 사건을 기획한 배후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선박은 멕시코에서 출발해 에콰도르·파나마·중국 등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고, 코카인 의심 물질을 하역한 이후 최종목적지인 페루로 가기 위해 출항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당국은 A 선박에서 붙잡힌 필리핀 국적의 승선원 20명에 대해 범행 경위와 가담한 정도, 남미 카르텔 등 국제 조직과의 연관성 등을 규명하면서도 이들로부터 코카인 의심 물질을 받아 국내에 유통하려 했던 구매책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매책을 붙잡지 못할 경우 비슷한 유형의 마약 밀반입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수사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에서 귀화한 민간인이 수사 보조 요원으로 현장에 투입됐고, 필리핀대사관 관계자가 옥계항에 계류된 A 선박을 찾아 승선원들을 면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합동수사본부는 승선원 전원의 모발과 소변을 채취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압수한 코카인 의심 물질 샘플에 대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다만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규모가 6700만 명이 동시투약 가능할 만큼 막대한 탓에 국과수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A 선박의 항해 경로 등을 고려하면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던 남미의 마약 카르텔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유통에 차질을 빚자, 물량 밀어내기를 위해 신시장을 개척하는 데 혈안이 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국토안보수사국(HSI)·마약단속국(DEA) 등 미국의 관계기관들로부터 첩보를 입수한 수사당국이 A 선박을 급습해 이번 사건이 발각됐다는 점에서 남미 마약 카르텔의 개입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세관 당국과 해경은 3만2000t 벌크선인 A 선박에 마약이 은닉됐다는 첩보가 들어온 직후인 지난 1일 합동검색작전을 세웠고, 이후 동해해경청·서울세관의 수사요원 90명과 마약 탐지견 2팀 등으로 구성된 합동검색팀이 A 선박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당초 150㎏ 안팎의 마약이 A 선박에 숨겨져 있다고 첩보가 들어왔지만, 합동검색팀이 내부의 특수 밀실을 포함해 A 선박 전체를 집중적으로 수색한 결과 코카인 의심 물질은 총 2t으로 밝혀졌다. 관세청은 지난달 20일 국내 수사·정보기관으로는 최초로 HSI로부터 마약 단속 업무협력에 대한 감사패를 받는 등 그동안 미국 기관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에 발 빠르게 첩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곧바로 수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서 적발된 박스 57개에 숨겨져 있던 코카인 의심 물질 2t이 늘어서 있다. 2t은 시가로 1조 원 상당이고 67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역대 최대 규모다. 관세청 제공
지난 2일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서 적발된 박스 57개에 숨겨져 있던 코카인 의심 물질 2t이 늘어서 있다. 2t은 시가로 1조 원 상당이고 67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역대 최대 규모다. 관세청 제공

국내에 마약을 유통하려는 시도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관세청 인천공항본부세관은 우크라이나발 특송화물을 통해 ‘메페드론’ 61.5g을 양초 속에 숨겨 들여오려던 카자흐스탄 국적의 남성 2명을 붙잡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 씨를 지난해 11월 구속 송치하고 B 씨에 대해선 지난달 지명수배를 내렸다고 지난 9일 밝혔다. 메페드론은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메트암페타민’(필로폰)의 대체재로 많이 사용되는 신종마약으로, 다량 흡입하면 흥분해 사람의 목을 물어뜯는 현상을 보여 ‘좀비 마약’으로 불린다. 이들 일당은 텔레그램을 통해 해외에 있는 마약류 공급책과 접촉했고, 밀반입한 메페드론을 외국인 밀집 지역에 집중적으로 유통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 밀반입 시도가 나날이 지능화되자, 관세청은 마약 단속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마약 생산과 밀매로 악명이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태국·미얀마·라오스 접경지대와 남미에서 들어오는 마약을 막기 위한 공조를 점차 늘리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2022년부터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과 총 11회에 걸쳐 합동단속을 실시해 총 318건, 474㎏ 마약의 반입을 차단했다. 검찰·경찰·해경·국가정보원 등 국내 기관들과도 손을 잡고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계획(2025∼2029년)’을 수립하기도 했다.

현재 관세청은 국경단계에서 사각지대가 없도록 마약밀수경로별 통관검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마약 우범국에서 출발한 항공편을 대상으로 항공기가 착륙한 즉시 검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인체에 무해한 전자파를 이용해 3초 만에 신변에 은닉한 마약을 적발할 수 있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를 비롯해 열화상 카메라 등 첨단 신변검색 장비를 확충하고, 올해는 기존 특송화물에 적용하던 인공지능(AI) 선별을 국제우편까지 확대해 위험화물선별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오는 2027년까지 국제우편물 전용 세관검사장을 새로 만들 계획이다. 코카인 의심 물질 2t이 적발된 직후 고광효 관세청장은 “최근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강화 조치로 국제마약조직이 아시아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는 첩보가 있다”면서 “대규모 마약은 선박을 이용할 가능성이 커 FBI 등 해외기관들과 공조를 강화해 해상을 통한 마약밀반입을 근절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세원 기자, 지건태 기자, 이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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