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
- 박준 ‘지각’(‘마중도 배웅도 없이’)
이곳저곳 피어나는 각양각색 꽃. 그중 으뜸은 벚꽃이다. 매년 찍는 이 이미지가 질리지 않는다. 보다 진하면 질릴 테고 연하면 눈길이 머물지 않을 터다. 자연이란 얼마나 절묘한가.
휴일에 카메라를 메고 나섰다. 벚나무 줄지어 선 곳을 알고 있다. 버스로 네 정거장. 걸어서 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그곳엔 이미 꽃구경 나선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해까진 한적했었다. 그새 소문이 난 모양이다. 이래서야 꽃 사진은커녕 다른 사람들 촬영에 방해가 될 뿐이다. 도망치듯 곁길로 접어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느닷없이, 커다란 벚꽃 구름을 만났다. 평균 수령인이라는 50년은 훌쩍 넘겼을 커다란 벚나무였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까이 인기척이 느껴졌다. 유모차 덮개 속 아기는 아마 잠들었을 것이다. 아기의 엄마는 스마트폰을 들어 벚꽃 사진을 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책임감으로 단단히 부여잡았던 유모차 손잡이에서 손을 뗀 ‘아기 엄마’는 지금-여기에 없었다. 필경 그가 지나왔을 어느 한때 속에 있었다. 나는 그가 찍은 사진을 누구에게 전송할지 짐작해보았다. 그 사진을 언젠가 유모차 속 아기도 보게 될지 모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벚나무 아래서 나는 잠시 아뜩해졌다.
그러니 봄꽃의 아름다움이 한 겹일 리 있겠는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그 짧은 사이가 짧기만 할 리‘도’ 없다. 아름다움은 늦게 온다. 늦게 와 오랜 통증으로 남는다. 나는 카메라의 방향을 꽃에서 유모차와 엄마 쪽으로 옮겨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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