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

고려아연의 첨단 산업기술이 MBK 파트너스와의 분쟁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설립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인데도 10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견고한 성과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과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근간인 고려아연의 기술력이 외국자본에 의해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가 핵심 산업의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 든다.

고려아연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방위산업 등 주요 전략산업에 필수적인 원재료를 공급하는 핵심 기업으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크고, 해외 유출 시 국가 경쟁력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지난 5년간 국내 기술 유출 사례는 97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액은 23조∼25조 원이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조차 외국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를 통해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경우, 이를 견제할 법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은 외국인의 직접투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외국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를 활용해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에 대한 규제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외국인 지배 국내 사모펀드’를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으며, 이는 국가 전략산업 보호에 심각한 허점을 남긴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같은 선진국들의 접근 방식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투자 주체의 형식적 국적보다 실질적인 지배력을 중요시해 외국인이 미국 내 법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더라도 외국인 투자로 간주하고 엄격히 심사한다.

만약 외국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를 통해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한다면, 고려아연의 국가핵심기술이 국내 산업이 아닌 외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거나 유출될 위험성이 크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 4년 만에 경영 악화를 이유로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다. 이후 핵심기술 유출 논란이 계속 제기됐으며, 결국 상하이차는 핵심기술만 확보한 후 쌍용자동차에서 철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출 논란의 핵심에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던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은 물론 일반 엔진 기술까지 총망라돼 있었다. 이는 고려아연이 당면한 외국계 자본의 인수 시나리오와 상당히 유사하다.

고려아연의 경쟁력과 성과는 단순히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국가적 자산이다. 따라서 고려아연의 적대적 M&A는 단순한 경영권 분쟁이 아닌 국가경제와 산업 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 국민과 산업계의 우려를 반영해 국가핵심기술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행령 수준의 개정이 아니라, 산업기술보호법 자체의 개정을 통해 외국인의 정의에 ‘실질 지배력’을 명확히 포함시키고, 국내 법인을 통한 우회 인수에도 엄격한 심사를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를 우회하여 국가전략산업을 잠식하는 일을 방지하는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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