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욱 국가자산관리연구원 원장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은 단순한 외교 변수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 57개국을 상대로 상호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6일에는 일본과, 다음 주에는 ‘최우선 협상 대상’ 5개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와 협상을 시작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기업들에는 예고된 파고이자, 구조적 대응이 필요한 경고음이다. 특히, 트럼프식 관세 폭탄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제기하는 ‘비관세 장벽’ 이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한국의 경영 환경을 ‘글로벌 기준에서 이탈된 상태’라고 진단하고, 이를 자국 정부에 공식 문제로 제기했다. 제프리 존스 전 암참 회장(현 이사회 이사)의 “글로벌 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들이 형사처벌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없는데, 한국은 CEO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부과한다”는 최근 발언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이른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 등은 그 중심에 있다. 이들 법은 기업 CEO에게까지 형사적 책임을 물어,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잇따른다. 암참은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해 미 무역대표부(USTR)에 개선 요구서까지 제출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다.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고, 그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구조는 해외 기업인들에겐 이례적이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상당수는 한국의 법적 환경을 다른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다고 평가한다. 투자 결정에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더불어,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근로시간 규제, 해고 제한, 복잡한 고용 절차 등은 기업의 전략적 운신 폭을 좁힌다. 세계경제포럼과 헤리티지재단 등의 글로벌 지표에서도 한국은 이 부문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결국, 규제는 경영 의사결정을 위축시키고 고용과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규제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국제 통상에서 교섭 카드로 쓰이고 있다. 트럼프식 압박 외교가 다시 시작되면서, 우리나라는 이중 피해를 볼 수 있다. 외부로는 관세 장벽에, 내부로는 규제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그 고리를 끊을 기회다. 규제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과 운영 방식이다. 과잉 처벌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 가능성과 국제적 조화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위험을 감수하며 성장에 나설 수 있다.

지금은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되돌아볼 때다. 트럼프의 관세 트집은 외부 압박이지만, 우리가 만든 규제의 벽은 내부 자해에 가깝다.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 있고 균형과 예측 가능성이 결여돼 있다는 데 있다. 규제를 통한 처벌 중심에서, 예방과 자율 중심의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투자 환경에 부합하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 기업에 숨 쉴 틈을 주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만든 비합리적인 규제의 틀을 손질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압박은 계속해서 우리의 과잉 규제 약점을 공략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CEO를 감옥에 보내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걷어낼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다.

김수욱 국가자산관리연구원 원장
김수욱 국가자산관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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