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李 “내란 종식 먼저”는 이율배반
정치파동 탓 선거에 개헌은 의무
각 주자, 개헌 시기·절차 공약해야
임기단축, 선거 주기 조정 필수
자기 희생 보여야 실천력 담보
개혁 희망 없는 선거는 국민 무시
“개헌은 물 건너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지난 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사흘 전 내놓았던 ‘조기 대선·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제안을 철회하자 나온 말이다. 개헌 ‘3일 천하’란 조롱도 섞였다. 국민 60%가 넘게 찬성하는 개헌이 이번에도 대선 정략에 묻힐 판이다. 승자 독식의 정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헌정 위기가 반복될 것이란 경고는 입바른 소리로 치부된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을 거부한 명분은 “내란 종식이 먼저”였다. 대통령이 파면된 마당인데, “(내란 종식은) 진상이 드러나고, 책임이 부과되고,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11일 비전 발표)까지란다. 내란죄 성립 논란에도 백번 양보해 단죄한다고 치자. 그 재판이 언제 끝나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은 확정판결까지 3년 9개월이 걸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은 14일 시작됐으니, 선거운동만이 아니라 혹여 당선되면 임기 내내 내란 종식 정치를 하겠단 건가. 재발 방지는 또 어떻게 할 건가. “내란 세력이 준동하는 상태”라며 헌법재판관 지명을 지목했는데, 설령 그렇다손 쳐도 바로잡을 방법은 개헌밖에 없지 않은가. “헌법이 국가 최고 규범”이라면서 헌법의 오남용 여지를 없애자는 개헌을 거부한다니, 이율배반이다.
이 전 대표로선 유력한 맞상대가 없는 선거 구도에서 구태여 개헌론으로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란 종식 프레임으로 개헌 동력을 덮는 게 최상이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그 속내를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반(反)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을 지속하겠다는 반(反)개혁이다. 입법부에 행정·사법부까지 흔들 권위주의 역행의 수구(守舊)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짖어도, 국민통합과 정치의 회복은 요원할 것이다. 극단적 적대·분열이 지속하는 상황, 이게 이 전 대표가 내란 종식 운운하며 바라는 일인가.
이번 대선은 임기 만료에 따른 정상적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 파동으로 맞게 된 비상조치다. 개헌론은 정치 개혁의 시급성에서 비롯됐다. 다른 어떤 부문보다 개헌 실행 로드맵을 약속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개헌 시기와 절차를 법으로 정하면 된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제정을 추진했던 ‘개헌절차법’ 전례도 있다. 각 대선 주자는 늦어도 6·3 대선 후 1년 내 개헌 완료(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정치 개혁 세부안은 정·부통령이나 책임총리 등 권력 분산 방안, 의원소환제 등 입법부 견제 방안, 양당 구도를 깨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까지 각기 다를 것이다. 4년 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등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나중에 논의하면 된다. 단 하나, 개헌의 당위성은 이견 없이 시한을 못 박아야 한다.
개헌 시기는 차기 대통령 임기, 선거 2년 주기 조정과 얽혀 있다. 이 역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비명계는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2026년 지방선거·개헌, 2028년 대선·총선 실시를 주장한다. 반면, 친명계는 차기 대통령 임기는 5년 그대로를 주장한다. 2028년 총선·개헌, 2030년 대선·지방선거(정성호 의원)에 무게를 둔다. 개헌 시점이 너무 늦다. 이 전 대표는 당선되더라도 5개 재판의 불확실성이 크다. 개헌을 다음 총선으로 미루면 권력을 사법 리스크의 방패로 쓰려 한다는 세간의 의심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셈밖에 안 된다. ‘재판 중지 쇼’를 하겠단 의도로 비칠 게 뻔하지 않나. 무슨 사달을 내려 그러는가. 이번에도 선거 주기를 못 맞추면 혼란의 연장일 뿐이다.
임기 단축은 개헌 후에도 차기 대통령의 차차기 대선·총선 출마의 길을 열어놓으면 누구에게나 불리한 방식이 아닐 것이다. 임기 단축론을 ‘임기라도 줄이자’는 정략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자기희생을 보여주지 않으면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다”(김동연 경기지사)는 개헌 실행 의지의 문제다. 이 전 대표도 4년 전엔 “꼭 해야 할 일에 임기 1년 줄이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하지 않았나. 최하류로 전락한 정치를 바꾸는 개혁에 대한 희망 없이 대선을 치르는 건 국민 무시다. 개헌 시간표를 놓고 경쟁해야 우리 정치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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