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전쟁 파고, 압도적 경쟁력으로 넘어라 - (3)SK하이닉스

 

풀HD영화 400편 1초만에 처리

세계 최고 속도·최대 용량 제품

‘풀스택 AI메모리 프로바이더’로

 

2010년대 업계 투자 줄일때도

SK그룹 차원서 기술 개발 확대

고객사 요청·난제 빠르게 해결

경기 이천시에 있는 SK하이닉스 M16 공장 전경. 지난 2021년 준공한 이곳은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 핵심 거점이다.  SK하이닉스 제공
경기 이천시에 있는 SK하이닉스 M16 공장 전경. 지난 2021년 준공한 이곳은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 핵심 거점이다. SK하이닉스 제공

“이 작은 칩에 어떻게 적층했는지 정말 놀랍네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글로벌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 2025’. 부스를 둘러보던 한 관람객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을 보고 이처럼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SK하이닉스는 개발 중인 6세대 HBM인 ‘HBM4’ 12단 모형을 공개하며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한 기술을 선보였다. 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미국인 직원은 “HBM 관련 기사에서 매번 SK하이닉스만 언급됐는데, 다른 기업들도 같은 제품을 만든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며 “실제로 보니 왜 SK하이닉스만 언론에 오르내리는지 이해가 된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SK하이닉스가 AI용 초고성능 D램 HBM 기술력을 바탕으로 ‘풀스택 AI메모리 프로바이더’로 진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차세대 HBM인 HBM4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는 등 글로벌 AI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르면 올 하반기 제품 양산 준비를 마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 시대에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를 적기에 공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17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HBM4 12단 제품은 AI 메모리가 갖춰야 할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12단 기준 용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제품은 처음으로 초당 2TB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역폭(1초당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을 구현했다. 이는 풀HD급 영화(5GB 기준) 40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으로 전 세대 제품(HBM3E) 대비 60% 이상 빨라졌다. SK하이닉스는 앞선 세대를 통해 경쟁력이 입증된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 HBM 12단 기준 최고 용량인 36GB를 구현했다. MR-MUF란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간 사이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이다. MR-MUF는 액체 보호재가 칩 사이에 빈 공간 없이 채워지기 때문에 경쟁사가 사용하는 방식 대비 방열 효과가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추가 작업인 필름의 접합 공정을 생략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생산 속도가 높고 불량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개발 역사는 201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 AMD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제품 스펙을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처음 HBM 개발을 결정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AI 관련 시장이 없었지만, 메모리반도체 발전 속도의 병목현상이 과제로 부상하며 컴퓨팅 시스템에서 메모리반도체의 성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세계 최초로 1세대 HBM 개발에 성공한 SK하이닉스는 정기적으로 사업 회의를 진행하며 다음 세대 제품 개발을 논의했다.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은 복잡한 기술을 조화롭게 접목해야 하기 때문에 유관 조직과 협업이 필수였다. 현재 HBM의 기틀이 된 MR-MUF와 같은 주요 요소 기술들도 모두 이때 기반을 다지게 됐다.

HBM의 성공에는 SK그룹의 전폭적인 지원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SK 인수 전 하이닉스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였고, 미래 기술이나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나 관심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SK그룹 편입 이후에는 기술 개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했고, 이는 고객사의 요청 사항이나 개발 과정 중 난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SK그룹에 편입된 직후인 2012년은 메모리 업황이 매우 좋지 않아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예년 대비 10% 이상 줄이던 시기였음에도, SK그룹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 여기에는 언제 시장이 열릴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진 HBM에 대한 투자도 포함돼 있었다.

SK하이닉스는 AI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미래 생산 거점에 선제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415만㎡ 규모 부지에 신규 메모리 생산기지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며 120조 원 이상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를 비롯해 이천·청주·용인 세 지역을 축으로 AI용 메모리를 적기에 공급해 나갈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와 첨단 후공정 분야 투자협약을 체결하면서 북미 지역 고객사 협력과 AI 경쟁력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 사장은 “고객사 요구에 맞춰 꾸준히 기술 한계를 극복하며 AI 생태계 혁신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며 “업계 최대 HBM 공급 경험에 기반해 앞으로 성능 검증과 양산 준비도 순조롭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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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기자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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