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 中, 사실상 해상무역 지배

 

페루 창카이항 지분 60% 소유

부산컨테이너터미널 ‘2대 주주’

물류리스크 줄이고 수수료 수익

 

미국내 항만 크레인 80% 점유

디지털 기술로 정보 수집 의혹

 

개도국에 시설 자금 빌려준 뒤

상환 못 하면 지분·운영권 확보

미국과 중국이 운영권을 놓고 충돌 중인 파나마 운하의 코코리 수문 유역을 지난 2월 21일 컨테이너 선박이 통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운영권을 놓고 충돌 중인 파나마 운하의 코코리 수문 유역을 지난 2월 21일 컨테이너 선박이 통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최근 격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미국에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25%까지 올린 중국의 움직임에는 무역전쟁 1기 때와 다른 일종의 ‘자신감’이 읽힌다. 그러한 자신감의 원천으로는 수출시장 다변화로 15% 선에 불과한 대미 수출 비중, 첨단기술 자립화 등이 있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현재 전 세계 해상 무역을 사실상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문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투자한 항구 프로젝트 총 129개… 남극 제외한 모든 대륙 = 중국의 해외 항구를 추적해온 미국외교협회(CFR)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중국이 투자한 중국 외 지역 항구 프로젝트 수는 129개에 달한다. 이 중 중국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항구 수는 17개이며, 14개 항구는 중국이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으로 CFR은 파악하고 있다. 중국의 항구 프로젝트 투자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심지어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걸쳐있다.

지난해 말 개항한 남미 페루의 창카이항은 중국의 중남미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화상으로 개항식에 참석했던 창카이항은 지분의 60%를 중국의 항만 운영사 코스코 시핑이 갖고 있는 곳이다. 운영도 이곳이 맡았다. 36억 달러(약 5조 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 운하를 비롯해 수에즈 운하, 페르시아만 등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엔 어김없이 중국이 투자한 항구들이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5년 중국 산둥(山東) 성의 물류기업인 중하이강코우(中海港口)는 CJ대한통운부산컨테이너터미널(KBCT)의 지분 20%를 인수해 제2대 주주가 됐다.

그래픽 = 하안송 기자
그래픽 = 하안송 기자

◇해상운송, 국제 무역의 중추… 지정학적 거점 되기도 = 세계 곳곳의 중요한 해로에 중국이 운영하는 항구가 있다는 것은 항만 수수료, 하역료, 입출항료 등 직접적인 항구 운영 수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무역 흐름에서 우위를 갖는다는 의미다. 중국이 자체 운영하는 항구를 통하면 운송비가 절감되고 물류 지연 리스크가 감소해 그만큼 운송비 및 시간에서 경쟁우위를 갖게 된다. 이와 함께 자원 수입이 안정화되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에서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해 말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컨테이너 거래의 27% 이상이 중국 또는 홍콩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지분을 보유한 항구를 통해 이뤄졌다.

항구는 단순한 물류 거점이 아닌 지정학적 거점이 되기도 한다. ‘말라카 딜레마(Malacca Dilemma)’를 겪은 중국은 여러 지역에 거점을 만들 필요를 인지하고 지정학적 거점 건설에 부심해 왔다. 말라카 딜레마란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이 2003년 언급한 것으로, 중국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야만 에너지를 운송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은 전체 길이 800㎞의 폭이 좁은 수로로,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이 해협을 거친다. 중국은 미국이 말라카 해협을 봉쇄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고, 이에 인도양에 접한 파키스탄 과다르항을 개발, 중국 서부 신장(新疆)자치구와 연결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China-Pakistan Economic Corridor) 등을 통해 말라카 딜레마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안보 위협 심각” 우려… ‘채무의 덫’도 = 중국이 전 세계 대부분의 항구 인프라를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미국은 경제적 위협뿐만 아니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파나마를 방문해 파나마 운하를 중심으로 한 군사훈련 강화 방침을 밝힌 것도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의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됐다.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항구 인프라가 스파이 활동, 정보 수집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국 해양 전략전문가인 아이작 카돈은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항구 투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위험은 해상 인프라와 운송 시스템 내 중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한다. 중국 기업들은 이른바 ‘스마트 포트’와 관련한 디지털 기술 및 프로세스를 인프라에 도입해 정보 수집이 용이해졌고 미국 항구의 운영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에선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중국산 항만 크레인이 중국의 스파이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조 바이든 당시 행정부는 중국산 크레인 등을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우려에 대해 당시 중국 정부는 “중국이 항만 크레인 데이터를 원거리 통제한다는 것은 완전히 황당무계한 말”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중국의 해외 항구 투자가 개발도상국들에 과도한 부채를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많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거액의 인프라 자금을 대출해주고, 해당 국가가 상환하지 못하면 항만 기반시설의 지분이나 운영권을 확보하는 이른바 ‘채무 함정 외교’라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가 대표적 사례로 건설 비용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중국이 대출해줬으나 스리랑카가 상환하지 못했고, 끝내 지난 2017년 99년간의 운영권을 중국에 양도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스리랑카는 외환 위기를 맞게 됐다.

박세희 특파원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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