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기획재정부가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12조 원대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예고했다. 이는 기존의 10조 원대에서 2조 원을 늘린 것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간접자본 지원, 국가 첨단전략산업 투자보조, 인공지능(AI) 분야 지원 등의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광범위한 산불 피해를 고려해 재해재난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35조 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 편성을 요구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2조 원대 확대안으로는 경제·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면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소한 15조 원까지 증액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전 국민 25만 원 지역화폐 지급 등 낭비성 지출 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도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협의를 통해 민생 관련 분야 예산을 일부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안을 옹호하면서도 경기 진작 분야를 중심으로 증액이 필요하다는 논평도 나왔다.
정부는 경제 상황상 시급하고 필수적인 재정 투입을 추진해 국회의 협조를 구하고, 정치권은 정파를 막론하고 재정의 추가 확대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확보하려는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경안을 둘러싼 여러 주체의 주장을 검토하기 위해 바람직한 추경안, 나아가 재정정책이 갖춰야 할 조건을 따져 보자.
우선, 추경과 재정정책은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경제가 고도화하고 시장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재정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를 수치화한 재정승수가 재정이 투입되는 분야에 따라 0.5 이하로 줄어든 모습이 나타난다. 이제는 재정이 단기적인 경기 진작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에 집중되거나 재난재해와 같이 긴급하게 지원돼야 하는 분야에 투입돼야 한다.
둘째, 재정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짜가 아닌 만큼 추경안 심의 과정에서 조달 방안을 반드시 고려하고 누가·언제·어떻게 예산을 부담하는지를 반영해야 한다. 당면한 불황으로 인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법인세가 급감해 기존 세수로는 추경안을 편성할 수 없다.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율 감축 때문이 아니라, 경기가 위축돼 전반적인 소득이 줄면서 세수가 감소한 것이다. 따라서 국채를 발행해 지출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가 이자를 내면서 갚아야 하는 빚이 된다. 미래세대의 후생 감소가 분명한 만큼 이들을 위한 사업 위주로 지출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셋째, 기업과 다양한 경제주체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지원과 제도 개선이 계속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지출이 우선돼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가 능동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제반 활동 즉 ‘통상 대응, 정책금융 제공, 규제혁신’ 등의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재정이 투입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정책 목표와 효과가 불명확한 재난지원금류의 지출 프로그램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국민 속이기와 미래세대를 착취하려는 게 아니라면.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