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프로야구 AI 판정 효과 입증

판결 데이터로 AI 재판 가능

판사 참고자료 활용 가치 충분

 

바둑처럼 결론 예측할 수 있어

과거 논란 판결 재평가 늘 수도

AI 통한 재판 공정성 개선 기대

사법부에서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들이 종종 있어 그 판결에 대한 평가가 나오곤 한다. 판사들의 의견이 일치했을 때는 판결 결과를 쉽게 수긍하지만, 판사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재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이러한 논란을 불식 또는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재판에 활용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얼마 전, 한 K-팝 아이돌 그룹과 관련된 판결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나오자, 그 그룹이 외신을 통해 판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판정 결과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은 스포츠 경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 말에 우리나라 투수 류현진 선수가 던진 공이 볼로 판정되자 포수 강민호 선수가 이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며 야구 글러브를 던진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프로야구에서는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이 빈번했지만, 지난해부터 AI가 스트라이크 존을 판정하게 되면서 선수들이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일은 사라졌다. 사실 AI 판정이 도입된 초기에는 정확도에 대한 의문과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AI가 모든 선수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판정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판정에 불만을 표출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프로야구 판정처럼 AI 기술이 재판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AI 재판의 발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AI 바둑의 발전 과정을 참고해 볼 수 있다. AI 바둑의 시초인 ‘알파고’는 인간 프로기사들의 기보(棋譜)를 학습하면서 발전했다. 지금은 AI 바둑이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기량을 보유해서 오히려 프로기사들이 AI의 수를 공부하는 상황이 됐다. 프로기사의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AI 일치율’이 있다. 이는 프로기사가 둔 수가 AI가 제시하는 최선의 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이 일치율이 높을수록 높은 기량을 가진 기사로 평가받는다.

이와 유사하게 AI 재판 역시 초기에는 판사들의 판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게 될 것이다. 학습이 진전되면서 AI가 내리는 판결이 점차 판사들의 판단과 유사해진다면, AI 재판의 신뢰도 또한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물론, 바둑에 비해 재판은 훨씬 복잡한 절차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AI 재판 정확도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자료로는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AI가 바둑계에 가져온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해설의 대중화다. 과거에는 바둑 해설은 오직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프로기사들만이 할 수 있었다. 이는 고수들의 수를 평가하려면 해설자 역시 고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AI 바둑을 활용해 최선의 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최고 기사가 아니더라도 바둑 해설이 가능해졌다. 심지어 아마추어 기사들도 유튜브 등에서 바둑 해설을 진행하는데, 이는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AI 재판도 일정 수준의 신뢰도를 얻게 된다면 법조계의 최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AI를 활용해 판결을 예측하거나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재판의 경우 많은 유튜버가 AI 재판 결과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바둑이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는 과거 대국에 대한 재해석이다. 수십 년 전의 명승부를 AI 바둑으로 다시 분석해 해설하는 유튜버들이 생겨났고, 과거에는 좋은 수로 평가받았던 착점이 AI 분석을 통해 나쁜 수로 뒤바뀌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어서 바둑 팬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마찬가지로, 판결이 엇갈린 재판들도 AI 재판 기술이 발전하면 다시 평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AI 재판의 정확도와 신뢰도에 대한 의문과 논란이 계속 있겠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법원 판례처럼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쌓여 있는 분야는 AI가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영역 가운데 하나다. AI의 빠른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머지않아 AI 기술을 활용해서 판결의 공평성에 대한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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