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단어 옆에 서기’라는 제목보다 실은 작가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든 책이었습니다. 조 모란(Joe Moran). 5월에 홍자색으로 피는 꽃 모란도 곧이겠구나, 약력부터 빠르게 읽어나가는 가운데 순간 이 문장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독일의 비평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워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일상의 진부하고 시시한 세부에 집중한다.”

설명만 놓고 보자면 이 사람 대체 무얼 하는 사람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특히나 “조 모란은 산문을 시화(詩化)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사학자 피터 헤네시의 말에 그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예서 제가 형광펜으로 삼킨 두 단어는 ‘일상’과 ‘시화’입니다.

‘평범한 단어로 우아한 문장의 경로를 개척하는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곧바로 따라쟁이가 된 나는 이렇게 또 흉내를 내봅니다. “한 문장으로 끝이 난다.” 사회문화사학자이며 대학교수로 특히나 시와 논픽션 분야의 글쓰기 교육에 매진해온 작가는 글의 서두부터 이런 매력적인 철학을 펼쳐놓습니다. “선생은 산만한 학생을 무작정 가르치려 들기보다 자신이 전에 받은 호의를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교육할 때 좋은 효과를 낸다.” 책이 전개되는 내내 그는 자신의 폭넓은 독서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장 읽기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다소 딱딱할 수 있는 글쓰기 이론서로서의 순기능도 한데 버무려냅니다.

흥미진진한데 팝콘을 씹어가며 읽을 수가 없습니다. 색색의 형광펜을 바꿔가며 쥐어야 하기에 손이 모자라는 연유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물으신다면 아주 자주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게 될 것을 미리 아는 까닭이라 해둘 참입니다. ‘내 문장’이 안녕한지 결국 쓰기에 있어 나와 직면하기 위해 이 책을 통과한 것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조사 ‘은는이가’부터 다시 배우리라 다짐하는 참입니다. 실패한 문장을 읽는 것은 들리지 않는 대화라 했거늘, 또한 잘 쓰인 문장은 자기 연민과 진부함의 해독제라 했거늘, 저는 탄핵심판 선고 결정문이 노래처럼 들리는지 툭 하면 켜놓고 앉아 있습니다.

“‘문장(sentence)’이라는 단어는 본디 법정에서 내리는 평결을 의미했다. 이런 종류의 문장은 기나긴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체포, 재판, 유죄 평결 그리고 감형 탄원은 모두 재판장의 문장으로 피고 앞에 선언되었다. 이때 문장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필사한 구절이라면 말입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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