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 감각

캐시 윌리스 지음│신소희 옮김│김영사

 

나무 보이는 교실서 공부한 고교생

창문없는 교실 학생보다 성적 높아

 

감귤류의 ‘시트러스 향기’ 만으로도

천식·폐질환 등 염증 경로 변화시켜

새소리·물소리 ‘스트레스’ 낮추기도

 

英 교수 15년간 인간 - 자연관계 연구

환경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추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봄이 왔다. 추운 겨울을 지나 날이 풀리면 몸도 마음도 자연스레 가벼워진다. 단지 따뜻해진 기온 때문만은 아니다. 눈은 어느새 초록빛 나뭇잎의 싱그러움을 따라가고 바람에 실린 꽃내음과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진다.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옥스퍼드대학교 생물다양성 교수 캐시 윌리스는 이 따뜻한 감각에 과학의 이름을 붙였다. ‘초록 감각’은 그가 지난 15년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추적하며 쌓아온 연구의 결과이자, 일상 속에서 자연과 더 깊이 관계 맺는 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책은 먼저 자연 풍경이 시각을 통해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한다. 일리노이대학교의 한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연구진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문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교실, 벽만 보이는 교실, 아예 창문이 없는 교실에 배치하고 학습 능력을 비교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나무가 보이는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시험 성적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수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수치 또한 빠르게 낮아졌다. 이는 자연이 가진 일정한 패턴, 즉 비슷한 높이와 굵기의 나무, 조화로운 잎의 구조가 인간의 시각 시스템에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프랙털’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은 그 복잡도가 중간 정도일 때 주의력이 회복된다. 들쭉날쭉한 빌딩과 무질서한 구조물로 가득 찬 도시의 풍경이 우리 눈에 피로를 유발하는 이유다.

자연의 향기는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몸에 영향을 준다. 식물의 향과 관련된 가장 유의미한 연구는 편백나무와 노간주나무 향기와 관련된 것이다. 이 두 향은 혈중 자연살해세포 수치를 뚜렷이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자연살해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악성 종양을 숙주에서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귤류(시트러스) 향도 현재로서 건강에 유익하다고 확실히 밝혀진 두 번째 식물 향이다.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등에서 방출되는 냄새로 이 독특한 향을 만들어내는 유기화합물은 폐에서 염증 세포의 영향을 억제하는 생화학적 경로와 천식, 기관지염, 만성 폐쇄성 폐질환과 관련된 염증 경로를 변화시켰다. 청각 역시 강력한 치유 수단이다. 새소리나 물소리는 뇌의 감정중추를 자극해 스트레스를 낮추고 통증을 완화한다. 실제로 병원 수술 후 회복실에서 새소리를 들은 환자들이 통증을 덜 느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희망적인 것은, 이러한 자연의 효과를 실외에 나가지 않고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책상 위의 작은 화분, 침엽수로 마감한 벽면, 나무를 쓰다듬는 촉감만으로도 회복 반응이 유도된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을 쓰며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집에는 디퓨저가 네 개나 되고 실내 화분은 책을 쓰는 사이 세 배로 늘어났다. 정원 또한 정갈하게 관리하기보다는 최대한 다채로운 형태와 색이 보이게 놔두었다.

물론 이 모든 효과가 하루 이틀 만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최소 8~12주간, 매주 90분 이상, 한 번에 20분가량 자연과 접촉해야 효과가 뚜렷하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계획하고, 비타민을 챙기는 우리라면 창밖의 나무를 20분간 바라보는 습관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쉬울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뼈아픈 대목은 한국의 ‘원예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영국인의 약 42%, 미국인의 55%가 원예 활동을 즐긴다. 반면 아파트 천국인 한국은 원예 인구의 비율이 17개국 가운데 가장 낮고 절반 이상이 원예를 해본 경험이 없다. 팍팍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마음의 메마름이 꼭 그 때문은 아닐지라도, 애써 그렇게 생각해본다. 우리에겐 ‘초록 감각’이 부족하다고. 오늘은 작은 화분이라도 하나 사야겠다. 364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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