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 허종호 기자, 마스터스 월요 골프 초대… 오거스타 체험기
촬영·전화 금지된 골퍼의 성역
취재진 500여명 중 28명 당첨
패트론 가득했던 코스는 ‘고요’
캐디 “즐기는 날”… 긴장 풀어줘
3m 퍼트, 홀 지나서 5m 흘러가
공 미끄러지는 ‘유리알 그린’ 실감
악명 높은 아멘 코너, 애먹었지만
15m 퍼트 성공… 일행들 환호성

오거스타=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3m 내리막 퍼팅. 숨이 가빠지고 어깨가 경직됐다. ‘그냥 붙이기만 하자’ 다짐하고 퍼터 헤드를 살짝 갖다 대자 볼이 주르륵 구르기 시작했다. 홀 옆을 지난 볼은 5m 더 흘러갔다. ‘원금’보다 ‘이자’가 한참 더 많은 상황이라고 할까. 결국 3퍼트. 한국에서 그린 스피드 3.0 이상을 경험해 본 적 없는 기자가 말로만 듣던 ‘마스터스 유리알 그린’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핸디캡 1번인 2번 홀(파5) 결국 트리플 보기를 했다.
3년째 마스터스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마스터스 기간 ‘월요일 골프 추첨’을 통해 전 세계에서 방문한 취재진 500여 명 가운데 28명에게 대회 종료 다음 날 라운드 기회를 제공한다. 기자의 골프 실력은 핸디캡 +25, 주위 사람들에게 소위 ‘백돌이’라고 불리는 기자는 월요일 골프 추첨에 덜컥 당첨돼 지난 14일(현지시간) 오후에 라운드를 하게 됐다. 골프 입문 2년이 되지 않은 기자보다 더한 초보도 있었다. 동반자로 배정된 미국 ABC 컬럼비아의 노아 채스트 기자는 이날 생애 처음으로 필드 라운드를 소화했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일반 골퍼들에겐 ‘성역’이다. 마스터스의 전용 구장으로 4대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게 매년 같은 곳에서 열리기에 친숙하지만 아무나 입장할 수 없다. 회원 가입은 초청으로만 진행되며, 카메라 촬영은 제한되고 휴대전화는 사용 금지이기에 알려진 정보가 매우 적다. 그래서 전 세계 수많은 골퍼가 꿈의 무대로 꼽고 있다.

애초 월요일 골프 추첨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골프채가 없었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은 골프채를 대여하지 않기에 급히 인근 골프장을 수소문했다. 마스터스 기간 전 세계에서 모인 골프 관계자와 팬들이 오거스타에서 라운드를 즐기기에 골프장엔 골프채가 턱없이 부족했다. 간신히 빌린 골프채는 드라이버와 퍼터를 제외하고 모두 ‘시니어용’이었다. 게다가 대여 가격은 175달러, 결제 당일 기준 25만 원을 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선 1번 홀(파4) 티박스에서 바라본 코스는 익숙하던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패트론(갤러리)으로 가득했던 코스는 텅텅 비어 고요했다. 페어웨이의 잔디색은 더욱 파랗게 느껴졌다. 이날 전담 캐디로 배정된 그렉은 “잔디 결을 그린에서 티박스 방향으로 흐르도록 깎은 탓에 티박스에선 진하게, 그린에선 연하게 보인다”며 “티샷은 잔디의 역결로 런(공이 구르는 거리)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또 “그린의 잔디도 마찬가지”라며 팁을 귀띔했다.
그렉은 그리고 “선수들처럼 잘 칠 수 없다. 오늘은 즐기는 날”이라며 기자의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왔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페어웨이는 매우 넓었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의 티는 대회 전용인 ‘마스터스 티’와 회원 전용인 ‘멤버스 티’로 나뉘는데, 마스터스 티(7555야드·약 6908m)와 멤버스 티(6365야드·5820m)의 전장 차이는 무려 1190야드(1088m)나 된다. 멤버스 티에서 보는 페어웨이가 무척 넓은 이유. 게다가 아웃오브바운즈(OB)가 없기에 큰 안도감을 안겼다. 실제 1번 홀 페어웨이엔 9번 홀에서 넘어온 공을 치는 골퍼가 많았다.

기자는 7번 홀(파4)에서 첫 파를 챙기고 캐디 그렉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였다. 악명 높은 ‘아멘 코너’, 11∼13번 홀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11번 홀(파4)에선 3온을 했으나 오르막 퍼트를 약하게 친 데 이어 너무 세게 친 탓에 3퍼트를 했다.
골프 매너 중에선 내 디벗으로 발생한 뗏장을 다시 원래대로 갖다놓고 밟아주는 것이 있다. 하지만 골퍼들은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에선 뗏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렉은 생수통보다 큰 병에 ‘녹색 모래’를 갖고 다니며 디벗이 발생한 곳에 부은 후 밟았다. 그렉은 잔디 씨앗과 비료, 녹색 염료에 모래를 섞은 것이라며 빠르게 잔디가 자란다고 알려줬다.
12번 홀(파3)에선 그렉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145야드(133m)의 12번 홀은 개울 뒤로 조성된 탓에 마스터스에서 선수들의 공을 많이 가로챈다. 기자는 9번 아이언을 요청했지만 그렉은 물에 빠지는 것보다 뒤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며 8번 아이언을 건넸다. 기자의 티샷은 슬라이스로 연결됐지만, 한 클럽을 크게 잡은 덕분에 물에 빠지지 않고 13번 홀 티박스 앞에 떨어지며 위기를 넘겼다.

아멘 코너의 마지막 13번 홀(파5)에선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공을 잃었다. 다섯 번째 샷 만에 공을 겨우 프린지에 올렸다. 하지만 홀과 거리는 무려 15m. 그렉의 조언대로 프린지를 타고 간 후 경사를 이용, 홀까지 공을 굴리는 루트를 선택했다. 그렉이 알려준 지점까지 공을 보냈고, 공은 멈출 것처럼 하더니 그대로 주르륵 5m가량을 타고 미끄러진 후 홀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는 물론 그렉, 동반자들이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3퍼트, 4퍼트를 만들어내던 유리알 그린이 처음으로 도움이 됐다.
15번 홀(파5)에선 티샷이 왼쪽으로 향하면서 마스터스 4라운드 당시의 로리 매킬로이와 비슷한 위치에 떨어졌다. 매킬로이가 환상적인 하이 드로샷으로 2온 한 뒤 이글 찬스를 잡았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렉의 제안은 쇼트 아이언으로 개울 앞까지 끊어가는 방법이었다. 결국 4온에 이어 2퍼트로 보기를 적어냈다. 버디를 낚은 매킬로이와 전혀 다른 결과였지만, 버디에 버금가는 만족감을 느꼈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강한 체력이 필수다. 골퍼는 캐디와 함께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모두 걸어야 한다. 그렉은 18번 홀 중반 우리가 2만 보를 걸었다고 귀띔했다. 기자의 시계도 이동한 거리로 2만 보와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최종 스코어는 23오버파 95타, ‘컨시드’ 없이 진행했기에 매우 흡족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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