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올로기 브레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어크로스
“극우 등 정치적 신념 형성은
사회적 산물 아닌 ‘뇌의 작용’
경직된 사고, 유전 탓만은 아냐
예술 같은 창의적 활동 늘려야“


지난겨울, 한국은 극단의 대립으로 점철된 시공간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법원에 난입했고, 헌법질서를 교란하는 말들로 선동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뿐 아니다. 극단적인 지지자들을 뒷배 삼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는 연일 독선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극우적 주장을 펼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있다. 나라 이야기만 할 때는 아니다. 내 안에서도 어떤 일에 대하여 ‘극단’적인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간다. 영국 출신 신경과학자이자 정치심리학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는 ‘이데올로기 브레인’에서 세간 사람들의 ‘정치적 신념’이 단지 성향과 출신, 정치적 동의, 즉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인간 뇌의 작용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념적 사고에 특별히 취약한 뇌가 있고, 그렇지 않은 뇌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데올로기는 “세상에 대한 절대주의적 설명과 더불어, 우리가 타인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대한 처방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문화’라고 불러도 별반 차이가 없겠다 싶지만, 둘은 다르다. ‘문화’는 “특이성과 재해석이 환영”되는 공간이지만,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전면적 지지가 필수”다. 뭉치면 용감해지고,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불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데올로기가 “도덕적 인간과 나쁜 인간을 구분하는” 원칙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인간이 지닌 진정한 잠재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만큼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강할수록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고 그에 따른 사고 전환이 어렵다. “사고의 경직성”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타고나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우리의 뇌를 씻어내 묵은 개념을 없애고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인지와 반사작용, 본능, 생물학적 요인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향은 선천적이면서도 후천적으로 인체와 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종교가 대표적이다.
종교는 신앙의 체화(體化)를 강조하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양한 의례를 경험하고, 그것을 나누는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경직될 수밖에 없다. 종교뿐 아니다. 민족주의와 정치적 당파주의, 독단주의 등 극단주의적 태도는 “인지적 경직성과 이데올로기적인 경직성” 등을 배태한다. 저자는 여러 연구를 종합해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뇌의 의사결정 중심인 전전두엽 피질에 도파민이 비교적 덜 집중된다”고 말한다. 대신 “즉각적인 본능을 제어하는 중뇌의 한 구조인 선조체에 도파민이 보다 많이 집중”된다. 자신을 인식하고 어떤 행동을 계획하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하면서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의 손상은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 취약성과 직결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의 활동이니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저자는 유전적·환경적 영향이 경직된 사고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꼭 유전적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부재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라면서, 어떤 이념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이나 공연, 공예, 음악, 문학처럼 고전적인 문화 활동”, 즉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 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데, 그 손가락이 남을 향할 때가 많은 게 문제다. 나 스스로 먼저 이데올로기에 취약한 사람은 아닌지, ‘이데올로기 브레인’을 통해 확인해 보면 좋을 듯하다. 380쪽, 2만2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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