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체’는 우리말에서 삼위일체를 이룬다. 장자가 말한 물아일체(物我一體)와 기독교에서의 삼위일체(三位一體), 그리고 포장마차나 허름한 선술집 벽의 안주일체(按酒一切)가 그것이다. 물론 한글로 쓰면 모두 ‘일체’가 포함되어 있지만 안주와 결합한 것은 한자가 다르니 이 셋은 삼위일체를 이룰 수 없다. 아니 때로는 술동무인 ‘일체’가 ‘일절’로 탈바꿈하기도 하니 더더욱 셋을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다.
일체(一體)는 ‘한 몸’이란 뜻이고, 일체(一切)는 ‘모두’란 뜻이니 전혀 다른 말이다. 장자와 성경에서의 일체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술집의 일체는 게으름,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제공할 수 있는 안주를 일일이 적어놓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안 되거나 귀찮으니 대충 ‘모두’라고 써 놓은 것이다. 또는 주문하는 것은 뭐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허세의 표현이기도 하다.
‘일체’가 ‘일절’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것은 한자가 뜻에 따라 다른 음으로 읽히기도 하는 까닭이다. 한자 ‘切’은 흔히 ‘끊다, 베다’의 뜻으로 쓰이는데 이때의 음은 ‘절’이다. 그런데 드물게 ‘모두’의 뜻으로 쓰일 때는 ‘체’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一切’을 ‘일절’로 읽으면 ‘전혀, 절대로’의 부정적인 뜻이 되고 ‘일체’로 읽으면 ‘모두’의 뜻이 되니 뜻이 거의 반대인 셈이다.
한자가 많이 쓰이던 시절에도 ‘按酒一切’를 ‘안주일절’로 잘못 쓰거나 읽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한술 더 떠서 ‘一體’, 즉 ‘한 몸’의 뜻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술 가는 데 안주 가고, 좋은 안줏거리를 보면 술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있으니 술과 안주가 한 몸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의사들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말 것을 권한다. 그래도 마실 거면 ‘깡술’보다는 안주를 곁들이는 것이 좋고 이왕이면 일체를 갖춰 놓은 집에서 골라 먹는 편이 낫긴 하겠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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