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잘사니즘’ 비전을 언급하며 주 4일 근무제를 제시해 근로시간 단축에 불을 지폈다. 그는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 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장시간의 ‘억지노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선거철에 늘 등장해 온 근로시간 단축론이지만,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을 치르는 지금은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을 줄기차게 외쳐 온 프랑스는 지금 조용하다. 한국이 근로시간 단축을 외칠 만큼 ‘과로사회’인가, 그리고 근로시간을 줄일 만큼 살림 형편이 나아졌는가. 그가 주창하는 ‘잘사니즘’과 ‘억지노동’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언사이다. ‘억지노동’은 직업을 구하지 못해 애쓰는 젊은 세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근로시간 단축보다 합의가 쉬운 ‘근로시간 유연제’는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가 17일 핵심 연구·개발(R&D) 인력 등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예외 조항을 제외한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자’는 제안을 민주당이 걷어찬 것이다. 미국의 엔비디아는 시간제한 없이 일하고, 대만 TSMC는 주 78시간 근무, 중국은 야전침대까지 놓고 연구에 집중한다.
이렇게 기술 전쟁이 치열한데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경직된 틀을 ‘연구개발 요원’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 유연 근무제는 근로시간 총량을 어기자는 게 아니다. ‘평균 주 52시간을 준수하되’ 주단위로 경직된 52시간 근무 기준을 풀어 주자는 것이다. 납기가 눈앞이면 일을 더 하고 일을 끝낸 후 충분히 쉬자는 취지다. 반도체 연구요원은 영감이 떠오를 때 일을 더 할 수 있게 해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고집하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모든 근로자를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침대에 몸을 맞춤)에 눕히자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등록 외국인은 148만8353명으로, 2년 전보다 25.1%(29만8768명)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같은 기간 외국인 근로자는 28만4550명으로 6만4254명(29.2%)이 증가했다. 외국인의 소득 수준도 높아졌다. 지난해 5월 기준 월평균 임금이 300만 원 이상인 외국인 임금근로자는 전체의 37.1%로 2년 전보다 7%P 많아졌다. 4년 전인 2020년 16.4%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내국인의 청년실업은 여전한데 외국인은 약진하고 있다. 주 4일 근무를 하게 되면 내국인의 소득이 올라가겠는가.
한국은 지난 10년간 ‘리쇼어링’을 꿈꿔 왔다. 떠난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법과 제도를 손질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 10년간 국내 복귀 기업은 ‘168’곳에 불과했다. 기업이 한국에 둥지를 틀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월화수목일일일’로 바꾸면 일자리가 늘어나겠는가? 정치인의 ‘값싼 포퓰리즘’이 대한민국을 죽이고 있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