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미국 인공지능(AI) 회사인 오픈AI가 지난 3월 ‘챗GPT-4o 이미지 생성’을 출시한 후 SNS상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스튜디오(지브리) 화풍으로 생성된 이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이용자가 몰리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녹고 있다”고 엄살을 부릴 정도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 모습을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가 2025년을 대표하는 문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 속 가장 의아한 건, 지브리의 침묵이다. 이 서비스로 인해 지브리가 보게 될 피해를 두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연출한 이시타니 메구미 감독이 “지브리의 이름을 더럽히다니, 용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냈지만, 정작 당사자는 조용하다. 심지어 지난달 말 지브리가 오픈AI의 이미지 변환에 대해 법적 대응 의사를 담은 경고장을 보냈다는 소식이 X(옛 트위터)를 통해 확산하자 지브리 측은 NHK를 통해 “경고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고 수습했다.

지브리는 신중론을 택했다. 오픈AI가 타 콘텐츠를 ‘학습’한 후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 대한 저작권 침해 논란은 이미 다른 영역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지브리가 대중의 자발적인 이미지 변환 시도를 막으며 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적잖이 부담될 수 있다. 또한, 저작권은 구체적인 형태의 저작물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 차원인 ‘화풍’까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일례로 지브리의 대표 캐릭터인 ‘토토로’의 이미지를 도용해 인형을 만들면 저작권에 저촉되지만, 토토로 닮은꼴 인형까지 문제 삼기 어렵다.

아울러 일본 문화청은 지난해 3월 발표한 ‘AI와 저작권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서 “작풍, 화풍 같은 아이디어가 유사할 뿐 기존 저작물과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 생성물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기준 삼는다면 지브리의 섣부른 문제 제기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지브리에 모든 짐을 지울 순 없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숙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브리뿐만 아니라 디즈니, 심슨 화풍으로 이미지를 변환해주는 서비스도 유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인을 상자에 담긴 바비인형 피규어처럼 바꿔주는 ‘바비코어’ 서비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AI의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향후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야 하는 저작물을 가진 모든 권리자가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사안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지능으로 만든 규범이 AI의 발달·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AI로 인한 피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법과 규범만으로 현재를 재단하긴 어렵다.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 2016년 AI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본 후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고 불쾌감을 표한 바 있다. 당시의 입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지브리는 침묵을 지키거나 암묵적 동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숲속에서 더 나은 답을 찾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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