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트럼프 관세전쟁 세계 대혼란
내수시장 취약 한국에 직격탄
日은 12개국 CPTPP로 방패
美빠진 자유무역 지속이 국익
韓, 아태 다자 FTA 가입 필요
초당파적 최우선 과제 삼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품목별 관세와 상호관세는 제2차 대전 이후 지속된 자유무역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자유무역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나오지만, 지역적으로 각국이 맺어온 자유무역협정(FTA)은 건재하는 만큼 ‘미국이 빠진 자유무역’은 불완전하나마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드라이브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의 물가가 들썩이고 국채 투매까지 이어지며 ‘트럼프 피로증’이 깊어지는 것을 보면, 그리 오래가지 못할 듯하다.
최근 국내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지한파 경제학자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와 트럼프 시대 한일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후카가와 교수는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은 수출의존형 경제인 한국에 더 큰 위기”라면서 “내수 시장 확보 차원에서 한일FTA를 검토할 만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한일FTA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은 내수 시장이 한국보다 견고한 데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태풍에 대응하는 CPTPP 방패가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유였다.
한일FTA는 노무현 정부 때 운을 뗐지만, 협상은 곧 중단됐다. 이후 한국은 일본과 호주, 영국, 멕시코 등 12개 중견국이 참여한 아태지역 메가 FTA인 CPTPP에 대해서도 먼 산 바라보듯 한다. 지난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이 협정의 전신인 TPP 협상을 추진할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농민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예산으로 처리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참여, 미국과 양대 주주가 됐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당시 “미·중 양국에서 러브콜을 받는다”고 자랑하며 한중FTA에 치중하다 가입 모멘텀을 놓쳤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TPP 탈퇴를 선언하자, 일본은 미국이 빠진 이 협정을 CPTPP로 확장, 주도권을 쥐었다. 문재인 정부는 ‘죽창가’식 대일 정책에 골몰하며 이런 변화를 외면했다. 다자 FTA에 가입해야 경제영토가 확장된다는 경제계 제언이 잇따르자 겨우 2022년 대선 직전 서면 형식으로 개최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가입 추진 결정만 했을 뿐 국회 보고나 가입 신청은 하지 않았다. 반일(反日)을 기치로 내건 정부로서 일본에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일관계 전환을 했으면서도 바뀐 한일관계의 동력을 CPTPP 가입에 활용하는 전략엔 어두웠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들어올 절호의 기회라는 권고가 많았다. 후카가와 교수도 “중국과 대만이 가입 신청을 했지만, 한국이 신청하면 일본이 우선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지난해 이 협정에 가입했다. 트럼프 2기 들어 관세전쟁이 본격화하자 EU에서도 CPTPP 가입론이 급물살을 타는 기류다.
한국이 지난 10여 년간 이 협정에 무심했던 것은 노무현·조지 W 부시 시대의 결단인 한미FTA에 자족한 측면이 강하다. 유일 패권국과 FTA를 맺었는데 합계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5% 정도인 12개국 FTA에 목을 맬 이유가 있느냐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관료가 많았다. 문 정부 때 인사들은 여전히 일본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한미FTA는 존폐 위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캐나다에 신(新)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적용 품목 관세 면제를 해주듯 한미FTA를 배려할지도 불투명하다.
6·3 대선이 5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CPTPP 가입 추진 동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CPTPP 가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새 정부 출범 후 초당파적으로 최우선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연내 가입도 어렵지 않다. 이 협정은 협상이 아니라 12개 가입국의 승인을 얻는 형식으로 가입이 결정된다. 일본이 한국 손을 잡고 CPTPP 가입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면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는 오는 6월 22일로 60주년을 맞는다. 트럼프 시대 한일 상생을 위해서 CPTPP 공조를 수교 60주년 사업으로 추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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