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서울 경복궁을 출발한지 40일차. 최종 목적지 도쿄의 히비야 공원까지 이제 2주일을 남겨놓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 도요하시(豊橋)까지는 33km. 코스 리더는 노자와 가즈하루씨로 이곳 오카자키(岡崎)의 주민이다.
78세인데 몸이 가볍고 군살이 없다. 퇴직후 65세에 서울에 어학연수를 다녀올 정도로 한국 팬이다. 오카자키역의 이에야스 동상 앞에서 출발했다.
노자와씨가 가져온 김치가 단원들 사이에 인기다. 단골 한국 식당에서 구입했다는데 맛도 있고 양도 충분했다.
뒤에서 한국가요가 들려온다. 김월호 이사의 스마트폰이다. 한국 노래 일본 노래를 번갈아 들으며 걸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도카이도(東海道)길에는 에도시대에 심은 소나무 가로수길이 남아 있었다. 엄청나게 줄기가 굵은 소나무 사이 사이에 중간 크기 그리고 어린 소나무도 보인다. 큰 나무가 고사하거나 바람에 쓰러졌을 때를 대비해 미리 심어 놓은 것이다. 강풍에 쓰러져 잘라낸 나무의 그루터기가 군데군데 보였다.
어느 회사에서는 음료수와 간식 거리에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해 놓고 직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의 어느 회사와 비지니스 관계가 있다고 했다. 재일동포 회장이 뒤늦게 달려와 직원들과 함께 ‘GO GO LET‘S GO!!!’를 외치며 떠나는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체조로 긴장된 근골격을 이완시켰다. 여중생 몇몇이 까르르 웃으며 우리들의 동작을 따라 했다.
지난 한 주일도 참 부지런히 걸었다. 지나간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조선인가도(朝鮮人街道)라 명명된 길을 걸었다. 전장 41km로서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関ヶ原)전투에서 승리한 후 천황을 만나러 지나간 길로서 출세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100여 년의 피비린내나는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260년간의 번영과 평화의 에도시대를 연 길이기도 하다. 쇼군과 조선통신사에게만 통행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16세기 후반 당시 최고의 권력자 노부나가의 거성이었던 아즈치(安土)성터는 폐허로 변해 표지판만 남아 있었다. 돌무더기를 보며 인생무상을 실감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혼노지(本能寺)에서 그가 변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선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시골길이 참 좋았다. 잘 정비된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이 세상사를 잊게 만든다.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방불케 한다.
일본의 명운을 가른 세키가하라 전투의 현장도 지나갔고 다루이(樽井)에서는 주민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어린 학생들의 가야금 연주도 감상했다. 오가키시(大垣市)의 젠쇼지(全昌寺)에서는 이날이 시장 선거일인데도 현직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수도 했다.
서울을 출발한 이래 날씨 덕을 봤는데 다루이에서 오와리이츠노미야(尾張一宮)를 향해 걸을 때는 최악의 기상조건을 경험했다. 강풍에다 물동이로 쏟아붓는 듯한 폭우였다. 우의도 우산도 소용이 없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뛰다시피 걸었다.

나고야에서는 노부나가 사후 꾀돌이 히데요시를 사실상의 후계자로 결정지은 회의가 열렸던 기요스(淸州)성도 둘러보았다. 10여 km떨어진 곳에는 나고야성도 있었다. 전국을 통일한 후 이에야스는 아홉째 아들에게 오와리국(지금의 나고야 일대)를 할양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한양 선점을 다투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쌓았다. 근처 공원에는 그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의 편에 선 그는 이후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걸었지만 반대편에 가담한 유키나가는 참수형을 당했다.
“지뗀샤(자전거)!‘ ’구루마(자동차)!‘를 외치는 일본 단원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들려온다. 자전거를 타고 보도를 가는 사람이나 도로변을 걸을 때 안전보행을 환기시키려는 일본 단원들의 외침이다.
나고야의 묘젠지(妙善寺)에서 다치바나 마을회가 주관하는 환영 행사에 참석했는데 처음으로 삼사복을 입어 보았다. 오케하자마(桶峽間) 전투 지역도 지났다. 군소 세력인 노부나가를 우습게 보던 이마가와가 폭우가 쏟아지던 밤 노부나가 별동대의 기습으로 목이 날아간 곳이다.
저녁 식사 시간. 비록 절반의 단원들이 방으로 올라갔지만 남은 단원들끼리 스마트폰에 뜬 노래 가사를 보고 노래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지는 가운데 40일차 일정도 끝이 났다.(2025. 4. 17)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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