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온난화 탓 ‘기후 조절’ 해류 시스템 붕괴 위기

 

바닷물은 온도·염도에 따라

밀도 달라지며 계속 순환 중

 

저위도 열을 극지방 수송하는

열염순환이 기후 조절의 핵심

이중‘대서양 순환’이 중심 축

 

북극 해수 → 남쪽 이동하는데

빙하 녹으며 해수밀도 낮아져

해류순환 정체, 이상기후 유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2∼13일, 주말을 맞아 봄의 정취를 느끼려던 사람들은 뜻밖의 궂은 날씨를 만나야만 했다. 봄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을 맞이한 것은 벚꽃이 아닌 강풍, 우박 그리고 이상 한파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13일 강원 산지 등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렸고 강풍으로 인해 간판이 파손되거나 과수·양봉 농가의 꽃과 꿀이 사라지는 등 전국 각지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눈과 우박, 강풍이 들이닥친 이날은 24절기 중 봄의 날씨가 가장 좋다는 청명(淸明)과 봄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의 사이였다.

가장 좋은 날씨와 가벼운 봄비가 내렸어야 할 4월 중순에 날씨가 뒤집힌 이유는 북쪽에서 차가운 절리 저기압이 떨어져 나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대기 상층 5㎞ 기준 영하 30도 이하의 매우 찬 공기가 내려와 지상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며 대기가 불안정해졌다는 설명이다. 이창재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13일 영향을 미친 저기압은 아주 차갑고 밀도가 큰 형태로 낮은 고도까지 하강하며 대기를 몹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이상기후의 배경에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거대 시스템의 붕괴가 있으며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래픽 =  권호영 기자
그래픽 = 권호영 기자

◇바닷물 따라 열도 함께 흐른다 = 지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그 안에서 계속 순환 중이다. 이를‘열염순환’(Thermohaline Circulation)이라고 칭하는데, 말 그대로 온도와 염도에 따라 바닷물의 밀도가 달라져 발생하는 거대한 전 지구적 초대형 순환 시스템이다. 남극에서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거쳐 북극해에서 다시 남극으로 흐르는 순환은 저위도 지역의 뜨거워진 해수와 고위도 지역의 차가운 해수가 서로 돌면서 적도 부근 해수가 과열되지 않도록 한다. 저위도의 열을 고위도로 수송해 열 차이를 줄이고, 해수에 녹아있는 물질이 전 지구에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컨베이어벨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거대한 순환의 원동력은 의외로 단순하다. 해수는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염도가 높고 온도가 낮을수록 해수의 밀도는 커진다. 반대로 민물에 가깝고 따뜻할수록 밀도는 낮아진다. 따라서 극지 인근의 해수는 고밀도일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 온도가 낮을뿐더러 일부 표층 해수가 해빙을 형성할 경우 수분이 줄어든 만큼 남은 해수의 염도는 높아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고위도 해수는 가라앉아 한류를 형성하고, 저위도 해수는 표층에서 난류를 형성해 밀도차에 따라 순환하는 것이다.

◇북극 빙하 녹자 컨베이어도 멈칫 = 이 중 대서양을 따라 일어나는 남북 방향의 순환 흐름을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이라 부른다. AMOC는 열염순환의 일부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저위도지역 표층의 따뜻한 해수가 북쪽으로 흐르는 동안, 북대서양지역에서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주변의 해수는 심층으로 가라앉아 남쪽으로 향하는 해류다. 열염순환 중에서도 AMOC는 북극해와 남극 인근을 오가며 인도양과 태평양까지 심층해수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라 할 수 있고, 전 지구적 열 순환 시스템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그런데 최근 북극권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AMOC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수는 소금물이지만 빙하는 소금얼음이 아니다. 즉 빙하가 녹으면 북극해엔 갑작스럽게 담수가 유입되는 셈이다. 그 결과 해수의 염도가 낮아지고 그만큼 밀도도 줄어든다. 즉 바닥으로 침강해 남쪽으로 흘렀어야 하는 대서양 심층수가 예전만큼 무겁게 가라앉지 못하게 되고 해류 순환이 정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픽 =  권호영 기자
그래픽 = 권호영 기자

◇냉각수 멈추자 대기 흐름도 뒤틀려 = 문제는 이 해류의 변화가 바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AMOC는 지구 기후를 조절하는 숨은 조율자다. 북대서양으로 열을 실어 나르며 유럽과 북미의 기온을 조절하고, 열염순환에 필요한 심층 한류 공급에도 일조한다. 아울러 제트기류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MOC가 약해진다는 뜻은 대서양 지역의 냉각수가 잘 흐르지 않게 된다는 뜻과도 같다. 즉 AMOC가 약화되면 북대서양 인근의 대기 온도가 달라지는데, 이는 북대서양 상공의 제트기류를 흔들고 북반구 전체 대기 흐름에도 영향을 준다.

제트기류는 고도 약 9∼12㎞의 대류권계면에서 초속 30m 이상으로 흐르는 공기 흐름이다. 한반도 인근엔 북반구 극전선에 위치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며 북대서양을 지나가는 제트기류가 흐른다. 이 제트기류가 약화돼 흐름이 느려지면 평소와 달리 뱀처럼 구불구불해지는 현상(사행)이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찬 북극 공기가 평소보다 더 남쪽까지 내려오고, 따뜻한 아열대 공기는 더 북쪽으로 침투한다.

한국처럼 중위도에 위치한 지역은 이러한 ‘출렁이는 공기 흐름’의 경계에 놓이며, 극단적인 이상기후에 노출되기 쉽다. 즉, 봄철에 갑자기 북극 기단이 한반도까지 밀려들면서 강풍을 동반한 눈·우박 같은 이상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린란드 주변에 민물 늘었다” = 최근 연구들은 AMOC가 단지 약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페테르 디틀레우센 교수, 수잔네 디틀레우센 교수 연구팀은 2023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AMOC가 이르면 2025년, 늦어도 2095년 사이에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870∼2020년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와 해류 흐름을 측정했다. 그 결과 AMOC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발견했으며, 금세기 내로 완전히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것이다.

연구팀은 해수 순환의 변화로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난 것은 마지막 빙하기 당시 AMOC가 붕괴했다가 복원되며 발생한 ‘단스가드-외슈거 이벤트’가 마지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북반구 평균 기온은 10년 사이 10∼15도나 변했는데, 이는 한 세기 동안 1.5도 변한 현재와 비교하기 힘든 수치다. 만약 정말 AMOC가 붕괴한다면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혁 기자
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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