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영웅 ‘천국보다 아름다운’

영국이건 미국이건 공항 터미널에서 묻는 건 비슷하다. 왜 왔느냐. 언제까지 머물 거냐. 천국의 입국심사는 어떨까. 왜 왔느냐 물으면 그냥 죽어서 왔다고 답하는 게 무난할 성싶다. 만약 ‘자격이 되니까 왔겠죠.’ 이렇게(삐딱하게) 대답하면 입국 보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천국의 사정관은 여권과 수하물검사를 안 하는 대신 온유와 겸손을 중요시한다.

언제까지 머물 거냐. 사실 이건 예상 질문이 아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물을 것 같다. 누굴 만나고 싶냐. 천국에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아직 지상에 있어서 못 만나는 경우도 생기지만 분명히 먼저 출발(?)했는데 입국심사에서 탈락해 다른 곳(아마도 지옥)에 가 있는 사례도 흔할 것 같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만큼 유명하다. 그런데 그게 ‘지옥의 문’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아마도 로댕은 ‘사람들이여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뭐 이런 얘길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생각하는 사람’은 두 부류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우선 지옥 체류자들을 보며 묻는다. ‘어쩌다 거기까지 갔느냐.’ 자신을 바라보는 산 자들(관람객)을 향해서도 질문한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일까, 막 사는 사람일까. 예능 ‘신발 벗고 돌싱포맨’(SBS)에서 종교 대통합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걸고 4명의 성직자(김진 목사, 성진 스님, 하성용 신부, 박세웅 교무)를 모셨다.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곤란해질 장면은 편집해주세요.’ 이런 요구가 사전에 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프로다. 시종일관 넷은 사이가 좋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들은 종교 버전의 봉봉4중창단 혹은 방탄소년단이었다. 그들을 이어준 공신은 각자의 신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음악동네의 가훈을 나는 이렇게 지었다. ‘음악은 우리를 만나게 한다.’ 하물며 이들은 이름조차 ‘만남중창단’이다. 만남을 꺼리면 천국도 멀어진다. 같은 부류만의 끼리끼리는 지옥의 문 대기석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이다.

드라마에선 못 할 일도 없고 못 할 얘기도 없다. 80대 아내(김혜자)가 30대 남편(손석구)을 만나는 이야기의 제목은 ‘천국보다 아름다운’(JTBC)이다. 파스텔톤 포스터엔 이런 말도 적혀 있다.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천국의 사정관이 묻는다. “살면서 행복했느냐.” 그렇다 대답해도 문은 안 열린다. “살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느냐.” 고개를 끄덕이면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옆의 실무자가 천국의 CCTV를 후루룩 돌려보고 ‘이 사람 맞네’라고 인증해 줄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죽음은 삶과 이웃이다. 죽는 날까지와 사는 날까지는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사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는 이 시를 1941년 11월 20일에 썼다. 어떻게 아느냐고? 육필원고에 제목을 달지 않고 대신 날짜를 써두었다. (안 해도 될 말인데 김혜자 배우가 탄생한 해도 1941년)

다투고 비웃고 이기고 그래서 행복했는가. 죽고 나면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따뜻한 찰나의 우리’(임영웅 ‘천국보다 아름다운’)뿐이다. 천국에 가려고 돈 모으고 부하들 모으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는 게 낫겠다. 천국에선 재력이나 세력을 안 본다. 이력서도 졸업증명서도 필요치 않다. 누구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느냐. 당신이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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