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13대 비구니회장 광용 스님

 

배려

상담학 공부하며 신도와 대화

비구니승가 복지 환경 등 집중

 

절제

탐진치가 인간 번뇌 이끈다 생각

매일 밤마다 명상하고 감사인사

 

겸손

나를 먼저 내려놓고 관계 형성

최소한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

 

도전

3·1절 스님이야기 뮤지컬 공연

여성 불자의 정체성 확립 힘써

지난 14일 서울 일원동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만난 제13대 비구니회장 광용 스님이 인터뷰 중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스님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크게 웃을 때 찍히면 덕이 없어 보일까 염려된다”면서도 “그래도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꽤 듣는 편”이라며 웃었다.  윤성호 기자
지난 14일 서울 일원동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만난 제13대 비구니회장 광용 스님이 인터뷰 중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스님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크게 웃을 때 찍히면 덕이 없어 보일까 염려된다”면서도 “그래도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꽤 듣는 편”이라며 웃었다. 윤성호 기자

불가의 제자 구도에서 언제나 비구니(여성) 스님은 비구(남성) 스님의 뒷자리다. 한국 불교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면서도 리더보다는 조력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전통적인 계율의 측면에서도 통념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국내 비구니 스님은 전국비구니회에 가입한 수만 5500여 명에 이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이 1만2000명이니, 거의 절반인 셈이다. 이들이 지난 2023년 가을, 만장일치로 이 조직의 수장을 뽑았다. 제13대 비구니회 회장 광용스님(72)이다. 선거 때만 되면 불교계에선 절차나 규정과 관련한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지곤 하는데, 이 선거는 유례없이 공명정대하고 축제와 같았다. 비구니 스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이고 리더이자 참스승인 광용스님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의 표본이다” “엄격한 비구니 조직의 자비 그 자체”라는 수많은 증언에 기대어, 지난 14일 서울 일원동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의 리더십은 ‘문사수’에 출발…‘탐진치’ 경계해야= 광용스님이 거대한 전국비구니회를 이끌기 위해 근본적인 철학과 방침의 바탕에 둔 것은 ‘문사수’다. 이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세 가지 지혜 즉, 문혜, 사혜, 수혜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이다. 문혜(聞慧)는 부처의 법문을 듣는 것이고, 사혜(思慧)는 자신의 삶을 법문에 비추어보는 것이다. 또, 수혜(修慧)는 법문에 맞게 내 삶을 변화해 가는 지혜를 일컫는다. 스님은 “수행자의 삶과 조직은 일반인의 그것과 분명히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했다. “겉모습도 다르고, 휴일도 다르고, 생활 양식도, 사고방식과 가치관도 다르죠. 그리고 전 이 모든 것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 오직 ‘문사수’의 지혜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비구니 스님들의 스승이자, 리더, 지도자인 광용스님은 모든 수행자들과 다를 바 없이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변화하며 나아간다. 이렇게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불교의 조직을 이끄는 일은, 동시에 불교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일이 된다. 스님은 “내가 하는 일은 당연하게 비구니회를 위한 일이지만 사실은 내 행복이기도 하다”면서 “불교에선 우리가 무얼 하든 자기 자신이 행복한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비구니회 회장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업적을 세우고, 교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사수’를 통해 나부터 행복합니다. 그것이 비구니 스님들과 비구니회가 맑은 정신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세상을 맑게 하는 힘의 근원이라 믿어요.”

스님에 따르면 ‘문사수’를 붙들면 탐진치 삼독을 멀리할 수 있다. 탐진치란 탐욕(貪慾), 진에(분노), 우치(愚癡·어리석음)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을 해롭게 하는 세 가지 번뇌’다. 스님은 “이것들은 ‘나’를 죽이는 독약이다”라고 했다. 앞서 나의 행복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시작이라고 했으니, 바꿔 말하면 탐진치로 인한 ‘나’의 불행은 주위와 조직을 불행하게 하고,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스님은 최근 20∼30대들에게 인기가 높은 불교박람회를 언급했다. 박람회장에서 가장 줄이 길게 늘어선 곳이 바로 입산(출가) 상담 코너였다는 것이다. “수행자가 늘면 저로서는 반갑지만, 기성세대가 곱씹어 봐야 할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탐진치로 가득 찬 세상을 물려준 건 아닌지, 그래서 다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게 아닌지….”

◇“얼굴만 봐도 리더감 보여…정치인도 마음 공부가 우선”= 문사수를 신봉하고, 탐진치를 멀리하며 평생 정진해 스님인데, 불교의 교리나 계율과 상관없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원칙, 인생 철학이 있을까. 스님은 “70년 넘게 살았는데, 없을 수 있나. 너무 많아서 문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많은 게 있지만, 단 하나를 대라고 하면 ‘배려’가 없으면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배려라는 건 ‘나’를 내려놓는 거예요. ‘나’가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타인을 배려하겠어요. 배려를 하게 되면 그때 ‘공심(共心)’이 생깁니다. 모든 일을 공심으로 해보세요.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배려가 있으면, 나와 사회의 관계에서 공심이 생긴다.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지만, 위정자들이 더욱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 같다. 스님은 “국민 개개인뿐만 아니라 시대의 지도자들에게도 배려와 공심을 위한 ‘명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조계종이 본격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K-명상’이 떠오른다. 광용스님은 이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을까. 스님은 “자기 전에 무조건 ‘나’로 돌아가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명상한다고. “일종의 자기 치유라고 할 수 있죠. 몸님 오늘 하루 애썼어요. 고맙습니다. 인사하면 그렇게 평온할 수 없어요. 행복이 그겁니다.”

스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리더는, 그 마음이 무조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리더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얼굴만 봐도 사실 마음이 읽혀요.” 스님은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도 못 들여다봐서야 되겠느냐”면서 “어떤 사람들의 얼굴엔 마음의 헐떡임이 얹혀 있다. 나는 그들이 제발 행복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데 스님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그저 “이 정도면 살 만하다”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했다. “누구의 눈물이 누군가의 웃음이 되는, 서로 더 잘살려고 싸워 이기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6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국민을 보듬고 화합을 이끌 새로운 리더가 나타날 것인가. 스님이 말한 배려와 공심을 품은 ‘행복한 리더’는 존재할까.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융합되는 ‘덕’이 있는 리더라면 더욱 좋겠지요.”

◇“비구니 스님 활동은 전 세계 한국, 대만뿐”= 2023년 11월 제13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으로 취임한 광용스님은 교계의 많은 이들로부터 배려와 공심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인물이다. 상담학을 별도로 공부하며 늘 ‘들을’ 준비가 돼 있었고, 조계종 포교원 산하 불교상담개방원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경험 측면에서도 지지를 얻었다. 2019년부터 회장에 오르기 직전까지 4년간 이미 비구니회 부회장직을 맡아, 이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비구니 승가의 새로운 도약을 리드할 적임자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스님은 취임 후 ‘서로 돕고 협력하는 화합 승가’ ‘비구니 승가 역량 강화’ ‘안정적 복지환경 조성’ ‘비구니 승가 위상과 정체성 확립’ 등을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1년 반. 스님은 “비구니 승가만의 청정함이 인정받고 있음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가 높다는 것이 늘 힘이 된다”고 자부했다. 기존엔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이벤트도 있었다. 지난 3·1절을 전후해 비구니 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게 예상 외로 흥행했다. 봉려관, 성해, 상근, 보각 등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과 독립운동에 조력한 비구니 스님들의 삶을 담아낸 ‘비구니 스님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다. “앞서간 비구니 스님들의 생명을 살리려는 진정성, 자비의 마음에 일반 관객들도, 또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울더라고요. 그저 조금만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죠.”

비구니 승가의 다양한 활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불교계는 여성의 권익과 관련해서는 사회 변화 속도에 한참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비구니 스님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과 대만뿐이다”라면서 “제도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고,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통념이라는 유리천장이 여전함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라시대 최초의 출가자도 여성이었고, 조선시대 불교가 억압받을 때 이를 필사적으로 지켜낸 것도 여성 불자들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서간 비구니 스님들을 떠올려보면, 미래가 밝을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광용스님은… 1973년 부천 소림사에서 대은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79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92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2007년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2010년 서울 마포구에 성림사를 건립했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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