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이준석 완주 3자 구도 원하는 野
“빅텐트” “배신자” 외치는 국힘
“거국내각 밑에 들어오라”는 李
과거 보수 정당 정치 다양성 포용
국힘은 ‘화전민-뺄셈’ 정치 골몰
완전 국민경선 단일화 고민할 때
정치적 촉이 빠르다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준석은 한국의 케네디”라며 “미래를 위해 제3 후보로 굳건히 나가야 한다”고 추켜세웠다. “중도 사퇴하면 구(舊)정치”라며 대선 완주를 주문했다. 뻔한 계산이다. 현재 구도에서 7∼9% 지지율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완주하면 45% 지지율의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무조건 이긴다. 이준석을 ‘제2의 이인제’로 만들어 6월 대선 승리를 쉽게 챙기겠다는 의도다.
국민의힘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을 차출해 와도 이길 수 없는 구도다. 그나마 대선이 좀 팽팽해지려면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의 후보 단일화밖에 답이 없다. 국민의힘은 또 ‘보수 빅텐트’ 타령이다. 이준석 없는 빅텐트는 찢어진 텐트일 뿐이다. 하는 수 없이 “단일화 안 해 패배하면 보수의 배신자”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압박하지만, 소용이 없다. 이준석의 핵심 지지층은 보수라기보다 2030 세대와 수도권 중도층이기 때문이다.
이준석도 영리하게 몸값을 높이고 있다. “나에게 성상납했다며 당 대표에서 내쫓고 자살을 강요하더니 이제는 입 씻고 ‘반명(反이재명) 빅텐트’를 치자고 한다”며 “이는 후안무치를 넘어선 금수의 마음”이라며 단칼에 잘랐다. 오히려 “빅텐트는 허상이고, 내가 당선돼 거국내각을 구성할 테니 국민의힘은 그 밑에 들어오라”며 역제안을 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부터 누비며 흔들리는 보수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국민의힘의 뺄셈 정치가 낳은 자업자득이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은 의리와 배신의 이분법, 능력보다 충성심만 따지는 동종교배로 보수 정당을 퇴화시켰다. 과거 보수 정당은 정반대였다. 다양성을 받아들였다. 역사상 최고의 인재 영입으로 꼽히는 1996년 제15대 총선. 임기 말 위기 속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좌파 중의 좌파였던 이재오·김문수를 파격적으로 영입해 보수의 정치 지형을 확 넓혔다. 대쪽 판사 이회창과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도 이때 들어왔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정의화·김무성·황우여는 20년 넘게 보수 정치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골수 혁신계였던 윤길중을 끌어안아 국회부의장과 민주정의당 대표까지 맡겼다. 그는 북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조봉암의 최측근이자 진보당 간사장을 지낸 좌익의 상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의힘은 이런 풍성한 생태계를 내던지고 화전민(火田民) 정치에 골몰했다. 반기문이든 윤석열이든 먹을 게 있어 보이는 쪽에 불을 놓아 한철 수확을 한 뒤 보따리를 쌌다. 약탈적 농업은 토양을 황폐화할 뿐이다. 내부에 마땅한 인재를 키우지 못해 결국 선거 때마다 바깥에서 대안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이번에 꺼낸 한덕수 카드도 불안하다. 친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순간 중도 확장력은 사라져 버린다.
지난 주말 국민의힘 경선에서 8인 후보가 계엄령과 탄핵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윤석열과 거리 두기는 과거를 정리하는 것일 뿐이다. 보수 재건의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의 미래는 이준석과 관계 재정립에 달렸다. 후보 단일화는 보수의 운명이 걸린 분수령이다. 이대로 3자 대결 구도로 가면 6월 대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에도 승산이 없다. 어느새 국민의힘에 이준석은 민주당 발목을 잡았던 정의당보다 훨씬 무거운 모래주머니다.
옛 튀르키예 영토인 고대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라는 전차가 있었다. 전차에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매듭이 달려 있었는데, 그 매듭을 풀면 아시아를 정복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당시 그곳을 지나던 알렉산더 대왕은 단칼에 매듭을 끊어버렸다. 국민의힘도 ‘고르디우스 매듭’ 같은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론조사의 초점은 곧 누가 이재명과 양자 대결에서 유리할지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선제적으로 이준석과 100% 국민경선을 통한 대선 후보 단일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역선택 방지 같은 꼼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화에 져서 후보를 못 내는 상황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전 대표였던 이준석조차 끌어안지 못한다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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