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20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화려한 장례 제대도, 관을 닫는 특별한 의식도 없애기로 했습니다. 품위는 지키되,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소박하게 치르고 싶습니다.”

20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미주대륙 출신 첫 교황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 201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른 프란치스코는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선택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사회의 변화하는 현대상을 포용한 교황으로 풀이된다.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로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그는 1986년까지 신학을 공부하며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업을 하던 도중인 1969년 그는 사제서품을 받게 돼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사목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기간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게 되어 그는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을 맡게 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거쳐 2001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뒤 아르헨티나 가톨릭의 주교회장을 역임했다.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교황은 평생 동안 기도와 고행을 하며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다. 199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에 취임한 뒤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버스로 출퇴근하는 등 청빈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호화로운 관사를 마다하고 난방까지 자주 끊기는 빈민가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는 사교적이지 않았지만 탱고와 축구를 즐긴다고 알려졌다. 그의 사촌인 심장전문의 우고 베르골리오는 교황에 대해 “천성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교황은커녕 추기경도 생각지 못했지만 그것이 그가 교황이 된 이유”라고 AP통신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4억 가톨릭 신도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은 한 나라의 수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적인 종교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외교적 영역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현재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 전쟁 등 전 세계의 분쟁과 인권 수호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어떤 정치지도자도 최고종교지도자가 제시하는 공동선을 무시하기란 어렵다.

교황은 폐렴으로 입원했던 병상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3주기를 맞아 “전쟁은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고 이스라엘엔 “어린이들을 해치는 건 잔학행위”라고 비판했다. 지난 11일에는 미국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내 “대구모 추방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대한 위기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그는 “올바르게 형성된 양심은 일부 이민자의 불법 신분을 암묵적 또는 명시적 범죄로 식별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비판적 판단을 내리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적인 종교의 수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진보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교황은 즉위 후 교황청 직원들에게 관례적으로 지급되던 보너스를 없애고 교황청의 재무・행정・인사 등 재정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감독할 재무원을 신설해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했다.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 신학적 이슈에 있어서는 엄격히 금하면서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세례 거부 등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등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반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교황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올해 출간된 교황의 첫 공식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그는 자신이 우표 수집과 축구 경기를 좋아하던 수도사였을 뿐이라며 항상 신의 뜻대로 어렵고 약한 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목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원하는 교회는 부드럽고 친밀하며 자비로운 교회”라며 “신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악의적인 성직자주의, 도덕적 우월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면서 차기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콘클라베(교황 선출회의)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은 총 138명이다.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110명이지만, 그중에도 보수 성향의 추기경이 많다는 분석이다. 진보 진영에선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현 가톨릭 2인자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추기경 후보로는 전임 교황이던 베네딕토 16세 측근이던 게르하르트 뮬러 추기경과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으로 이들은 동성애를 포용하자고 주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도를 맹비난한 성직자다.

정지연 기자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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