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세계 동시 출간되며 화제가 된 저서전 ‘희망’을 생전 직접 확인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출판사 제공
올해 전세계 동시 출간되며 화제가 된 저서전 ‘희망’을 생전 직접 확인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출판사 제공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딘 후 자신을 영접하러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넨 첫 마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인들 사이엔 ‘뜨거운, 그 해 여름’이 있다.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방한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안겼다.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간 머무르며 124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고 김대건 신부 생가를 방문하는 등 쉴 틈 없는 ‘100시간’을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청년, 정치 및 종교 지도자 등 각계각층 다양한 구성원들을 만나 사랑과 평화,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로 나라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있을 때라, 그의 방한은 종교를 초월한 큰 위로와 ‘치유의 시간’으로 여겨졌다. 또한, 온화하면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적확한 언어, 파격적 행보로 ‘교황 열풍’을 일으켰고, 로마 바티칸으로 돌아간 뒤에도 긴 여운을 남겼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세월호 유가족, 북한이탈주민,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 ‘약자’부터 챙겼다. 그가 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칭함 받는지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는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공항에 나온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만났고, 일일이 손을 맞잡고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기억한다”고 위로했다.

방한 내내 교황은 ‘파격’을 이어갔다. 5만 여 명이 모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대중 미사를 진행한 교황은 당시 청와대에서 제공 예정이었던 전용헬기가 아닌 KTX를 타고 대전을 찾았다. 또한, 자신을 위한 특별 편성 열차를 거부하고, 시민들과 함께 일반열차에 올라 현장에서 큰 환호를 받았다. 또, 즉위 후 “나는 잃을 것이 없다”며 방탄차를 거절했던 교황은 이날도 무개차(오픈카)를 타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장애인들을 만난 교황이 의자에 앉지 않은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78세로 이미 고령이었던 교황은 50여 분 내내 선 채로 장애 아동들의 공연을 관람했고, 장애 아동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거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이들을 축복했다.

교황 방한 최대 행사였던 광화문 시복식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교황은 방한 사흘째인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 등 순교자 124위를 천주교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미사를 집전했다. 이에 앞서 그는 광화문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신자와 시민을 만났는데,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고 단식 중이던 김영오 씨를 보고는 차에서 내렸고, 그의 두 손을 꼭 잡아 줘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생전 청년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였던 교황은 방한 당시 한국과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위한 격려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방한 나흘 째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천주교 아시아 청년대회의 폐막 미사를 직접 집전한 교황은 성경 시편 구절을 인용해 “젊은이는 깨어 있어야 한다”며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6000 여 명의 청년뿐만 아니라 시민 등 5만 여 명이 교황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방한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는 남북한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교황은 이날 강론에서 “죄지은 형제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강조했다. 또, 미사 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 스님(1954~2023)을 비롯한 한국 12개 종단 지도자들과 만나 “형제들로 서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자”고 당부했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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