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런던 마장동 vs 종로 런던동

영국인 친구가 마장동에서 먹은 감자탕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SNS 덕분에 관광지도 아닌 로컬 맛집을 찾아가다니, 감탄하며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내 그곳이 서울 마장동이 아니라 런던의 한식당임을 알게 됐다. 고기를 고를 수 있는 정육 냉장고가 있고, 주문하지 않은 밑반찬이 나오며, 테이블에서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곳.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바로 그 풍경이다. 이른바 ‘런던시 마장동’.
반대로 서울에도 ‘종로구 런던동’이 있다. 가장 한국스러운 북촌 한편에 위치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유럽 감성 가득한 인테리어와 다채로운 베이글, SNS 콘텐츠에 최적화된 ‘빵집 오픈런’의 상징이다. 코로나 시기에 외국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서울 사람들에게 작은 런던이자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정작 런던에서는 베이글보다 스콘이 더 유명하지만.
뉴욕 맨해튼 한복판,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동남사거리 원조 기사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오로지 한글로만 적힌 이 식당은 1980년대 택시 운전사들이 찾던 기사식당을 그대로 옮겨왔다. 한국 달력, 벽걸이 선풍기, 브라운관 TV, 동전 커피 자판기에 제육볶음과 김치, 계란말이, 감자조림 등으로 차려진 백반 한 상은 ‘현지화’라는 타협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뉴요커들이 평균 2시간 이상 대기해야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힙한 식당이다.
이 음식점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맛도 중요하지만, 더 큰 이유는 ‘진짜 같다’는 데 있다. 단순히 식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와 감성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생생한 로컬리티는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해외의 한식당은 교민을 대상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서울’ ‘아리랑’ 같은 이름의 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고급 한식당은 드물었고, 생존형 가게가 많았다. 2000년대 후반, 정부 주도로 한식의 고급화와 세계화를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K-팝, K-드라마와 같은 한류의 바람을 타고, 그때 뿌린 한식 세계화의 씨앗이 문화콘텐츠와 함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식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비빔밥이나 불고기 같은 전통 한식을 넘어 불닭볶음면, 떡볶이, 김밥 같은 스트리트 푸드에 가까운 일상식이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가 자랑하고 싶었던 ‘궁중요리’보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할머니 떡볶이’ 같은 음식이 더 널리 사랑받는다. 소수의 고급문화보다 보편적인 생활문화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식문화가 시대와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방식으로 현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의 런던 베이글 뮤지엄처럼 한국적 감성으로 외국 문화를 재해석한 공간도 있고, 런던의 마장동이나 뉴욕의 원조 기사식당처럼 한국 문화를 고스란히 옮겨와 세계인의 일상으로 스며들게 한 사례도 있다.
이제 음식은 단순히 한 나라의 전통을 보여주는 수단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창출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식문화의 교류 속에서 음식은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가장 맛있는 언어가 되고 있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한식의 세계화
2008년 10월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개최한 이래, 한류의 인기와 더불어 최근 수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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