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가 빛이라…’ 내일 개봉
뮤지컬영화 아닌 인도 작품 주목

지난해 열린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2등상에 해당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인도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감독 파얄 카파디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넷이다. 각자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며 연대하는 3명의 여성, 그리고 그들을 품고 있지만 결코 따뜻하지 않은 보금자리인 뭄바이다.
프라바(카니 쿠스루티)는 성실한 간호사다. 집안의 바람대로 정략 결혼한 남편은 독일로 돈을 벌러 간 후 감감무소식이다. 병원에서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의사가 있지만 프라바는 “난 결혼한 사람”이라며 애써 외면하며 얼굴도 기억 못 하는 남편을 마냥 기다린다.
룸메이트인 아누(디브야 프라바)는 프라바와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다. 하지만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종교적 이유로 남들의 시선을 피해 무슬림 남성과 교제 중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누의 집에서는 결혼을 재촉하고 ‘골라 보라’며 이름 모를 남자의 사진을 잔뜩 보낸다.
이 병원의 요리사로 일하는 중년 여성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수십 년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재개발이 시행되는데 자신의 거주 사실을 증명할 서류 한 장 없어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프라바와 아누는 파르바티의 이사를 도우며 동행한다.
이 영화는 분주한 뭄바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곳에서 23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낯설다는 남성, 임신 사실을 숨기고 가정부로 일했다는 여성 등 몸뚱이 하나 편히 누일 공간도 없이 뭄바이로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이들의 목소리로 이 고단한 도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모두에게 뭄바이는 ‘살고 싶은 도시’지만 ‘살 만한 도시’는 아니다. 인도의 젊은이들이 몰리고 해가 지면 더 북적거리는 공간이지만 종교 및 남녀 차별의 벽은 높고 빈부 격차는 극심하다.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는 충돌한다.
하지만 버티는 삶을 사는 주인공들은 “뭄바이는 꿈의 도시가 아니라 착각의 도시다. 화를 내지 않는 게 뭄바이 정신”이라며 애써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거세하고, “뭄바이는 좋은데 적응이 안 된다”고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성평등 후진국으로 평가받는 인도의 이야기를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세 여성 캐릭터에 투영시켰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다. 기차 화장실에 적힌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남성 전용’이라는 문구는 여전한 인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편을 마냥 기다리는 프라바가 남편이 보낸 지도 확실하지 않은 독일제 밥솥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처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오랜 관습에 저항하려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도시의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박제돼 있는 차별과 편견을 깨기 위해 들이받는 대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의 연대와 배려, 이해를 통해 스스로 단단해지려 노력한다.
이 과정은 영화 속 공간의 변화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 전반부의 배경인 뭄바이는 무채색을 띠며 해가 지고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면 그 인위적인 불빛으로 인해 숨을 쉰다. 반면 후반부의 배경인 파르바티의 고향 라트나기리에는 나무와 흙, 그리고 바다가 있다. 별다른 조명 없이 자연광 아래서 촬영한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영근 세 사람의 관계가 내뿜는 기운이야말로 진정한 ‘빛’이라고 이 영화는 웅변한다. 특히 인도 영화지만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퍽 인상적이다. 23일 개봉. 118분. 15세 관람가.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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