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AI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강화
AI반도체는 국가의 전략자산
금융·에너지·방산 등에 필수
美, AI 패권전쟁서 승기 잡기
엔비디아·AMD 제품은 물론
3국 우회 中 거래도 틀어막아
화웨이 설계·SMIC 양산 등
中반도체 생태계 구축했지만
아직 美기술력엔 미치지못해
‘HBM 2강’ SK하이닉스·삼성
장기적으로는 수출 타격 예상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 및 군사력 강화를 견제하기 위해 고성능 AI 반도체에 대한 수출 제한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번 조치는 엔비디아, AMD 등 미국 기업의 주력 AI 칩 제품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한 제3국 우회 거래까지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출 제한 대상에는 엔비디아의 H20, AMD의 MI300 시리즈 등 중국이 대규모로 도입하려던 최첨단 AI 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55억 달러(약 7조8000억 원), AMD는 8억 달러(1조1300억 원) 규모의 분기 매출 손실을 떠안고 한국 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공장에서 AI 반도체를 생산 중이며, 미국의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 포함된 제품을 중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AI 칩 수출 통제에 대해 정리했다.
1. AI 반도체는 무엇
AI 반도체는 대규모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필수인 AI 학습 및 추론에 최적화된 칩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AI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 등이 있다. 이중 GPU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대비 수백 배의 속도를 구현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점에서 국가 전략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차세대 기술인 생성형 AI,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군사 무기체계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차세대 기술 외에도 제조업, 금융, 에너지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두뇌’ 역할을 하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은 2023년 439억 달러(약 62조2100억 원)에서 2030년에는 1179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 어떤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나
미국 기업들이다. 특히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80% 이상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AMD, 인텔이 뒤를 잇고 있으며, 최근에는 구글과 테슬라, 애플 등도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며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글로벌 1∼2위를 다투며 AI 반도체 시스템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유럽은 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 등이 AI 반도체 자체 설계보다 차량용·산업용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본은 소니가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화웨이(하이실리콘), 바이두, 알리바바 등이 자체 AI 칩을 개발하고 있지만, 미국의 규제 등으로 아직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3. 미국이 중국 AI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는 이유는
미국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개발과 군사 현대화를 견제하는 등 중국과의 ‘AI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AI 반도체 수출 제한에 나섰다. 실제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 측에 이번에 수출 제한이 걸린 H20 칩이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H100 등 다른 최고급 칩보다 연산 능력은 낮지만, 고속 메모리 및 기타 칩과의 연결성이 뛰어나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앞서 수십 개 중국 기관이 첨단 AI, 슈퍼컴퓨터, 고성능 AI 반도체 기술을 군사적 목적에 활용하려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는 목적과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 중국의 AI 수준이 어느 정도길래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부문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1월엔 중국 4대 국유은행 중 한 곳인 중국은행이 향후 5년간 AI 산업계에 1조 위안(약 195조 원) 이상의 금융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국유투자회사인 궈지인베스트먼트와 중국반도체투자기금(CICF)도 12조 원 규모의 AI 투자 기금을 조성했다. 실제로 성과도 나타나고 있으며, AI 모델인 딥시크가 대표적이다. 고작 80억 원의 저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의 AI 성능이 미국 빅테크인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의 AI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국은 이 같은 AI 기술을 안면인식 시스템을 비롯해 감시카메라, 의료진단 등 전 방위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다만 공공안전 및 사회통제용 인프라에도 역시 광범위하게 도입돼 있는데, 이 점이 미국과의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5. 미국과 중국 AI 반도체 기술 수준 차이
중국은 그동안 뒤처졌다고 여겨졌던 AI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손해를 보면서도 정부 자금 덕에 간신히 설비가 돌아간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 자국 기업인 화웨이가 자사 AI 가속기 칩의 수율을 1년 만에 20%에서 40%대로 끌어올려 수익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 중인 미국의 엔비디아와 같은 수준이다. AI 칩은 화웨이가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가 양산하며 알리바바·텐센트 등이 구축하는 데이터센터에 탑재돼 자립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사실상 완료했다. 검색 플랫폼인 바이두도 자사의 AI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쿤룬 시리즈’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물론 아직은 미국의 기술력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7나노 이하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어 첨단 반도체 양산을 대만의 TSMC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6. 어떻게 수출 제한이 이뤄지나
미국은 엔비디아, AMD 등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중국에 H20이나 MI308 등 AI 칩을 수출하고자 할 경우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최고급 성능의 칩인 H100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을 당시 엔비디아가 이 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저성능의 H20을 개발했는데, 이마저도 수출길이 사실상 막힌 것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 반도체의 대중 ‘우회 수출’ 통로를 막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특히 중동, 동남아 등 제3국 소재 기업을 통해 반도체가 중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은 적성국이 아닌 비(非)동맹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앞서 AI 반도체에 대해 ‘해외직접제품규정(FDPR)’을 적용했다. 한국·대만 등 우방국 기업도 미국산 기술이 일부 포함된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7. 대중국 수출 봉쇄에 따른 글로벌 영향은
미국의 엔비디아는 자사의 저사양 AI 가속기인 H20의 대중 수출이 막히면서 지난 1분기(회계기준 2∼4월) 실적에 55억 달러(약 7조8000억 원)의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수출을 위해 사전 제작한 물량이 재고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처럼 중국에 저사양 AI 칩인 MI308을 판매 중인 AMD도 8억 달러(1조1300억 원)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국 수출 봉쇄 방침에 따라 자국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급락하면서 금융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관세에 따른 비용 상승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에 공급하는 물량을 한국·대만·일본 등에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중국은 당장 AI 기술 성장에 발목을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제재에 맞서 독자적인 AI 칩 생태계 육성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여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8. 국내 기업에는 어떤 영향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감소에 따른 타격이 예상된다.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은 전체의 약 47%를 차지한다. 특히 AI 칩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인 HBM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당장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물량을 완판한 상태고, 삼성전자도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된 엔비디아의 AI 칩 H20 일부에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AI 칩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에 쓰이는 반도체 공정 장비와 소재 역시 향후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이를 납품하는 국내 중소기업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9. 국내에 기회 요인은 없나
중국이 미국의 AI 칩 수출 통제에 맞서 자국산 또는 제3국에서 관련 기술 확보를 모색함에 따라 국내 기업도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의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의 성공을 계기로 AI 모델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지원할 맞춤형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고성능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에는 미국 빅테크를 제외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또 미국과 중국 모두를 꺼리는 제3국과 협력해 반도체 및 AI 분야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기술 종속 우려가 심화하자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기술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이미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국내 기업들은 제3국 입장에서 가장 쉽게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거론된다.
10. 한국 기업이 필요한 전략과 정부 대응은
앞으로도 미·중 무역전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 속에 정부와 우리 기업들은 반도체 관련 공급망을 다시 면밀하게 진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및 제3국과의 기술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의 이 같은 대중국 압박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을 더욱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격차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과 생태계 조성이 더욱 시급해졌다는 평가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같은 무역전쟁의 여파는 직접 우리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해외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자립도도 높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경기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경쟁력 있는 해외 소부장 기업과 국내 중소기업을 다수 유치해 공급망 급변에 대응하고,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후속 대책이 범정부 차원에서 ‘이어달리기 식’으로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용권 기자, 김성훈 기자, 김호준 기자, 박상훈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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