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최근 한국전력공사의 간부들이 경기 하남시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공사가 하남시의 반복된 불허로 1년 가까이 지연되자, 급기야 사업 주체인 한전 측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님비(NIMBY)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하남시의 변전소 증설 불허 처분을 ‘부당하다’며 취소 결정까지 내렸는데도, 현재까지 하남시는 요지부동이다.
하남시와 일부 주민이 내세우는 변전소의 전자파와 소음 우려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유령 위험에 대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실제 변전소 주변에서 측정되는 최대 전자파 세기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인 우리나라 안전기준의 1%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가정에서 접하는 생활전자파보다도 낮았고, 설비를 옥내화하면 기존보다 전자파를 55∼60%나 추가 감소시킬 수 있음이 확인됐다. 즉, 위험이 없다. 그들의 주장대로 만약 그 수준의 전자파가 위험하다면 이번 설비 증설과 옥내화로 전자파를 기존 대비 줄일 수 있으니 오히려 적극 찬성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을 떠나 일관성도 없는 주장이다.
송·변전 설비 증설이 계속 지연됨에 따라 수도권 전력 수급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매년 3000억 원을 더 내고 비싼 가스발전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송전망 발목 잡기 행태가 비단 하남시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북당진∼신탕정 송전선 건설에는 2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현재도 수십 건의 송전선로 사업이 각종 민원으로 인해 늦어지고 있다. 경기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동되려면 원전 10기 분량의 전력 수요가 발생한다. 또,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곳곳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등이 자리하면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송배전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당장의 전력 공급 차질과 경제적 손실을 떠나, 우리 미래 먹거리 산업의 성장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
이번 문제는 동해안 원자력과 석탄화력 전력의 수도권 송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태양광·풍력 증설에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하루 4∼6시간 생산되는 태양광·풍력 송전을 위해 24시간 운영되는 원전과 같은 송전선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태양광과 풍력 송전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다. 서남부의 태양광·풍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것은 동해안 원전 전력 송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송전 문제로 인해 원자력과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발전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경제성장도, 탄소중립도 불가능하다. 미래를 생각한다면서 필수 인프라 확충에는 등을 돌리는 모순이 계속된다.
다행히 지난 2월에 통과된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제도적으로 송배전망 확충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송전망 확충의 골든타임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하남 변전소 파행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더는 비과학적 지역 이기주의에 국가 에너지 미래가 흔들리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울 때다. 유령에 휘둘리면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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