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정부효율부(DOGE)를 앞세운 연방정부 몸집 줄이기, 사법부·대학들과 각 세우기에 뭔가 심오한 배경이나 숨겨진 의도, 큰 청사진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그나마 공적인 관점에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으로 엄청난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 정도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버전이다. 물론 오락가락 관세 부과 혹은 가상화폐의 제도화 과정에서 트럼프 일가가 꽤나 많은 금전적 이득을 봤을 것이라는 추측, 트럼프의 경제를 보는 눈은 40년 전에 멈춰 있다는 말도 나돈다. 정답은 없다.
단, 트럼프 대통령이 끊임없이 무역수지, 대미 투자액, 고용 지표, 국채 금리, 주가지수 등 눈에 보이는 숫자에 벌벌 떨며 움직인 각종 정책에 그간 미국이 쌓아온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패권을 유지하는 핵심축이 하나씩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을 담당하는 아프리카국을 폐지하고 기후변화와 난민, 민주주의 및 인권을 다루는 부서들의 폐지도 검토되고 있다. 별로 돈도 이슈도 되지 않는 사하라 이남 외교에서 사실상 손을 뗀다는 취지다. 호주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대로면 지금도 중국 공관이 미국보다 많은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중국에 더욱 뒤처지게 된다.
국무부 장학금인 풀브라이트 장학금도 대폭 축소된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트럼프가 그렇게 외쳤던 ‘아메리칸 드림’을 가능케 한 외국인 대상 유학 지원 프로그램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이 같은 미국 외(外) 국적 유학생들이야말로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아예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반(反)유대주의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등을 두고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하버드대 등에 대해 유학생 비자 취소 ‘협박’도 하고 있다. 하버드대에 유학생 0명이 되는 상황이 어떤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 다만, 워싱턴DC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영리한 게, 하버드대와 대립각이 부각될수록 ‘기득권 vs 트럼프’의 구도가 만들어져 지지층 결속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1기 때 공화당에서 발의했던 ‘미국주권회복법’처럼, 자신들이 만든 국제질서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아멕시트’ 행보도 계속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채 100일이 되지 않았고 정권 반환점이 될 중간선거도 아직 멀었다. 중국과의 갈등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격화되고, 동맹과의 관계는 느슨해져 불안해지고 있다. 동맹과 어깨 겯고 중국을 압박했던 전선은 무너졌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계속 불안하게 보고 있다. 영국의 피터 헤더(역사학자)와 존 래플리(정치경제학자)는 고고학적·정치경제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로마, 그리고 미국과 서구의 발전과 몰락을 비교·분석한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에서 로마의 몰락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이뤄졌다고 썼다. 막대한 부채 등 내부의 붕괴, 그리고 강력한 외부의 위협이 더해지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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