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트럼프 관세 우선협상국 韓日

일본 협상단은 저자세로 곤경

그래도 野는 국익 앞세운 협치

 

일본 국회에선 질의하고 조언

여의도에선 상대 정당 맹비난

4류 저질 정치엔 국민도 책임

일본의 ‘트럼프 관세’ 쓰나미 대응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NHK 저녁 뉴스를 챙긴다. 서울은 컨트롤타워 부재로 워싱턴의 마가(MAGA) 공세를 관중 입장에서 지켜본다. 반면, 도쿄는 최우선 협상 대상자로 관세 공격을 방어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1월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손자용 사무라이 투구까지 들고 가 ‘아부의 기술’로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한국보다 겨우 1% 낮은 24% 관세로 일본을 압박했고, 대미 무역흑자를 제로(0)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680억 달러로 8위의 대미 흑자를 기록한 일본으로서는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서두르다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에 부닥쳤다. 도쿄는 미국 대선 이후 고(故)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까지 동원해 사전 조율을 시도했으나 큰 성과는 없다. 트럼프는 장관급 협상장에 ‘난입(亂入)’했으며,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트럼프보다 자신을 낮춰 부르는 가쿠시타(格下)라는 표현을 써 저자세 굽신 외교라는 비판 여론까지 나오는 등 혼선이다.

일본이 미국에 핵폭탄 공격을 받고 백기 항복한 이후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최대의 충격이라고 한다. 1853년 미국 매슈 C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구로후네)에 굴복하여 불평등조약을 맺은 이후 비군사적 수준에서 최고의 대일 타격이라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 ‘구로후네’는 ‘해외에서 온 엄청난 타격’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일본 역시 90일 유예된 상호관세가 그대로 시행되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26%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0년 대미 외교를 수행한 일본 정부는 관세 폭탄 대응 단계를 높이며 국론을 통합한다. 이달 초 트럼프의 상호관세 조치를 ‘국난(國難) 수준의 사태’로 간주하며 총리 직속 종합대책본부를 전격 설치했다.

놀라운 일은 정부의 조치에 야당이 협치를 선언하며 힘을 실었다는 점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초선 의원들에게 10만 엔 상품권을 돌린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이시바 총리에 대한 정치 공세를 멈추고 협치를 택했다.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 전 국민 100만 엔 지원 등 경기 침체 대응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야당으로서는 자민당을 몰아세울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지금이 정쟁이나 벌일 때냐는 유권자의 매서운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일본 국민의 85%가 관세로 일본 경제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다. 냉철한 유권자들의 판단과 자중하는 정치인들의 절제력이 위기에서 공선사후(公先私後) 행보로 방향을 잡았다.

도쿄도 지요다(千代田)구에 소재한 일본 국회의 모습은 우리 여의도 의사당과는 차이가 있다. 의원내각제라 우리 대통령제 국회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극단적인 충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원들은 꼼꼼하게 자료를 준비해와 이시바 총리에게 질의하고 조언한다. 성실하게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총리의 답변 역시 진지함이 배어 있다. 지난 4일 총리와 야당 대표 회동에서도 힐난 대신 조언이 주류를 이뤘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 정국에 우리 국회는 참으로 가관이다. 대정부 질문에서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이니 해산하라고 고성을 지르는 4성 장군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이에 반발해 야구장의 벤치 클리어링을 연상시키는 행태를 보이는 국민의힘 의원이나 한숨이 나온다. 국제 정세나 관세 폭탄은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지난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정치는 4류라고 표현한 지 꼭 30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대에서 10년 가까이 정체된 원인은 극단적인 정치 문화, 이기적인 정당과 미성숙한 국민의식 등에 있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춘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 1948년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이던 아서 반덴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은 민주당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외교정책 지지를 선언했다. 무소불위의 여의도 국회가 하지 못하는 것이 협치이고 정치 발전이다. 매년 한·일 국회의원 간 친선 축구대회만 할 게 아니라, 성숙한 정치문화 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일본이 왜 협치를 잘하는지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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