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겸손 남기고 교황 선종… 신달자 시인의 추모 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두려움 스칠때

교황님의 선한 얼굴보며 위안받아

가뿐하게 가실 수 있게 기도합니다

“아디오스 교황님” 

“아디오스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추모객 중 한 명이 작별인사(adios)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위로의 미소, 그 푸근한 해님이시여!

말문이 막힙니다. 80년을 열어 온 제 입이 탁 막히는 듯합니다. 아, 아버지 아버지 교황님이시여!

2014년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저는 어느 신문사 일일 기자가 돼 취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화문 어느 높은 건물 위에 앉아 숱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차를 타신 채 지나가는 모습을, 그 우렁우렁한 사람들의 탄성 소리와 기쁨에 들뜬 사람들의 흥분을. 탄성과 흥분으로 저는 거의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그분을 뚫어져라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취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건물 위 취재가 끝나고 내려왔을 때 아주 잠시의 찰나에 교황님과 눈이 마주쳤고 순간 빛이 터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찰나의 빛은 그 이후 몸이 아파 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나 지극히 우울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꺼내 손과 가슴을 덥혀 오곤 했습니다. 그분 미소가 밥이 되고 약이 되고 이불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흔들릴 때 그 빛은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저는 발 빠르게 일어서서 “아멘!” 하면서 그분 사진을 마주 하며 오래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 어떤 분은 ‘그런 분 같은 교황이 어디서 나오겠냐’고 했다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마 하느님이 준비돼 있을 겁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이 자리에서 물러나시고 아니나 다를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위로가 되고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제 노트북 바로 곁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른팔을 높이 들고 활짝 웃으시는 사진 하나가 있습니다. 핸드폰에 넣어 다니다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알고 노트북 옆에 두고 기도를 해 왔습니다. 이분의 건강만은 꼭 지켜주시라고요.

아니 어쩌면 그분이 절 위해 더 많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냥 그 얼굴을 보면 예수님의 전갈을 직접 받는 것 같은 위안을 받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교황 시절 스스로 자신을 챙기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 언제나 헌신이신 교황님은 통증을 견디시며 우리에겐 미소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분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그러나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처럼 프란치스코라는 성명과 같이 가난한 자와 자연보호, 헌신으로 시간을 다 보내셨다는 걸 압니다.

교황님은 약자 편이셨고 겸손의 대명사이기도 했습니다. 그 허름한 구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이에게는 따뜻하셨습니다. 멀리 계셔도 먼 거리감이 없고 바로 제 옆에서 절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이 보이는 교황님이셨습니다. 다시 회복하셔서 미소를 보이실 때 ‘아아 이젠 됐다’라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는데 이게 무슨 작별입니까. 슬픔도 늙어 메마른 눈물 줄기가 뜨겁게 흘러내립니다.

혼란스러운 외부 상황도, 저에 대한 두려움도, 갑작스럽게 스치는 시대의 불안감도 교황님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면 ‘하느님과 직접 통화하시는 분이 여기 계시구나, 바로 여기 제 앞에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교황님 얼굴에는 예수님의 지도가 있습니다. 교황님의 미소에는 성모님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모든 인류의 아픔과 고통, 상처에 성모님의 사랑을 건네주신 교황님.

그런데 이 같은 글을 쓰는 것 외에 이 미미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군요. 이 미미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바로 기도입니다. 교황님 가시는 길 천국의 천사들이 다 모시겠지만 조심조심 잘 잘 잘 교황님을 모시도록 그 미소에 고통 다 사라지고 가뿐하게 가실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교황님, 위로자이시고 희망을 주신 우리 교황님, 결코 우리 옆을 떠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마음 안에 더 깊이 더 뚜렷하게 계실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교황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앙의 가치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황님.

△가톨릭 세례명 : 엘리사벳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64년 잡지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환상의 밤’ 당선 △1965년 숙명여대 국어국문학 학사·석사(1980년)·박사(1992년) △1972년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 등단 △1997년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2012∼2014년 제38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2015∼2017년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제17대 이사장 △201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 수상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