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느낌입니다.”
3년여 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은 작곡가 유희열이 내놓은 첫 마디다.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며 활동을 중단했던 유희열은 휴가를 떠난 선배 배철수를 대신해 18∼21일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페셜 DJ로 나섰다.
왜 라디오였을까? 그가 ‘라디오 스타’이기 때문이다. 1997년 ‘FM 음악도시’를 비롯해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작곡가 유희열’을 넘어 ‘방송인 유희열’로서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를 베개삼던 이들도 적잖았다. 그런 그가 3년의 공백 끝에 라디오 부스로 들어왔다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유희열은 라디오 스튜디오를 ‘첫사랑’이라 칭했다. “첫사랑 같은 라디오 스튜디오에 앉아 있으니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니 라디오가 제게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면서 “오늘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시간의 때도 많이 묻었을 것이고, 살면서 있었던 주름 같은 것이 자글자글할 것이다. 내려놓음으로 인해 편안함도 있을 텐데 제 본모습을 여과 없이, 한편으로는 누가 되지 않게 나누겠다”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준비한 멘트로 오프닝을 열었다.
부침이 심한 한국 연예계에서 그동안 유희열은 승승장구해왔다. 작곡가로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프로젝트 그룹’ 시스템을 구축했고, MC로서 탄탄한 행보를 이어왔다. 오디션 시대를 맞아서는 서울대 작곡가 출신다운 해박한 지식과, 이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언변으로 대중의 공감을 샀다.
이렇듯 지적인 즐거움과 해학, 풍자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주던 유희열이었기에 앞선 표절 논란은 대중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그가 오프닝에서 언급했던 ‘때’와 ‘주름’이 더 선명히 보이는 것은, 유희열이 그동안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너무 투명했던 탓이다.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유희열은 애써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스스럼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지난 3년 간 어느 방송도 기웃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혹자는 유희열이 표절 논란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기억한다. 유사성 논란이 불거진 것과 표절 판정은 다르다. 하지만 당시 유희열은 이를 꼼꼼히 짚으며 따져묻지 않았다.
왜일까? 유희열은 평소 일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를 존경했다. 누구보다 그의 음악을 자주 들으며 자신을 연마했다. 그랬던 자신의 음악에 사카모토의 색이 묻어있다는 지적을 뼈에 새기듯 듣고 곱씹었다.
조용히 자신의 것을 내려놓은 유희열 대신 사카모토 류이치 측이 입장을 냈다. “두 곡의 사이에 유사성은 있으나 법적 대응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다. 유희열의 새 앨범이 잘 되길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유희열의 ‘아주 사적인 밤’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쿠아’가 비슷하다는 지적에 대해 당사자가 이같은 반응을 내며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회는 냉혹하고 또 잔인했다. 바다 속 물고기가 상처 입으면 동료 물고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 상처를 헤집고 먹잇감 삼듯 유희열의 또 다른 곡들에 대한 표절 의혹이 유튜브와 SNS 등에서 불거졌다.
여기서 묻고 싶다. 사카모토 외에 당시 유희열의 어떤 곡이 논란이 됐는지 기억하는 대중이 얼마나 될까? 또한 유희열이 베낀 것으로 추정된다는 곡의 저작권자들이 어떤 문제제기를 했던가? 아울러 일부 네티즌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검증없이 옮겨 적으며 심판자 노릇을 하던 언론은 다 어디로 갔나?
지난 2023년 4월, 투병 중이던 류이치 사카모토가 숨졌다. 당시 유희열은 그 누구보다 슬퍼했다고 한다. 가장 존경하던 뮤지션의 죽음 앞에 드러내놓고 슬픔조차 표출할 수 없는 마음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떨린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살면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소리가 잠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유희열은 토로했다. 의연해져서, 괜찮아져서 다시 마이크 앞에 선 게 아니라는 뜻이다.
“반가움을 표시해주는 분들, 소리 없이 들어주시는 분들, 불편함을 느끼실 모든 분께 감사함과 오랜만에 인사드리게 되는 어색함에 사과의 말씀을 같이 전한다.” 유희열은 모두에게 재차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누가 되지 않게 나누겠다.”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속내다. 물론 그럴 순 없다. 누군가는 여전히 “불편하다”고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쪽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한다. “다시 유희열이 듣고 싶다.” 이런 외침도 적잖다.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할 대중의 바람이다.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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