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국제부장
관세로 중국 억누르는 트럼프
중국은 ‘제조2025’로 급성장
제조업·첨단기술 한국 위협
美 관세 잘 활용하면 韓에 기회
안타까운 근로시간 감축 경쟁
4년 날리면 역사의 죄인 될 것
며칠 전 평소 친분이 있는 금융업계 고위관계자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요즘 제일 핫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로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한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을 이야기하는 기자에게 금융업계 고위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는 한국에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색다른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관세 그 자체만 바라보면 위기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겨냥하는 지향점, 즉 중국 억제라는 점을 보면 기회라는 것이다. 이미 주요 제조업에서 한국을 따라잡고, 인공지능(AI)과 전기차, 휴머노이드 등 일부 첨단 산업에서는 한국을 앞서기 시작한 중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설명이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을 한국이 잘만 활용하면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의 추격을 다시 따돌리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을 추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중국은 10년 전인 2015년 5월 8일 제조업 성장을 위한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고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올해가 10대 전략 산업에서 한국과 독일 등 제조업 강국과 같은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마지막 해이다. 중국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KDB미래전략연구소의 지난해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중국에 앞섰던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에너지·자원 분야는 중국에 역전당했다. 소재·나노 분야, 기계·제조 등의 격차도 급격하게 줄어들어 따라잡히기 직전이다.
첨단 기술은 더 큰 문제다. 중국 전기차 BYD는 지난해 3분기 테슬라를 앞지르는 판매 실적을 기록했고, 우리나라에도 올해 진출을 시작했다. 중국은 자율주행 기술은 일부 실용화해서 사용 중이다. AI 분야에서는 미국의 각종 제재에도 저비용·고성능 추론 모델 딥시크를 만들어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가 발표한 ‘AI 인덱스 보고서 2025’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최고 AI 사이 성능 차이는 2월 기준 1.7%에 불과했다.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급속한 성장을 보여 지난 19일에는 베이징(北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이는 AI와 로봇 기술, 배터리 등의 기술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준 행사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은 올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강력한 견제구를 던지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상품에 145%의 관세를 부과해 중국 제조업에 타격을 입혔다. 엔비디아와 AMD, 인텔의 저사양 AI 칩까지 중국 수출을 금지하며 중국의 AI 분야 기술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중국 기술이 사용된 커넥티드카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자율주행 기술 개발도 막는 등 중국의 첨단 산업 발전 흐름을 옥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의 급부상에 밀리던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4년의 임기를 한국이 잘 활용할 수 있느냐다. 중국에 위협당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문제는 요원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17일 본회의를 통해 패스트트랙에 올린 반도체특별법에는 주 52시간 예외가 담겨 있지 않다. 심지어 오는 6월 3일 장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줄이기 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민주당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주 4.5일제를 거쳐 4일 근무체계(주 32시간 근무)로 가자는 공약을 내놓았고,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유연성을 통한 4.5일제로 맞선다.
중국은 밤샘 연구로 한국을 멀리 따돌리고, 미국의 기술패권마저 빼앗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 정치권은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시대’라고 불리는 현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당장의 표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 대선의 승자가 누구든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준 4년이라는 기회를 허망하게 날린 사람은 역사에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잘살던 시대를 한 세대도 안 돼 막 내리게 한 대통령’이라는 역사의 죄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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