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최근 30대 초반의 중국 여성 두 명과 각각 알게 됐다. 한 명은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한 명은 무역 회사에 다닌다. 그 둘에게 요즘 중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냐고,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다.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이는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시장은 정말 크다”며 내수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반면, 무역 회사에 다니는 이는 “솔직히 많이 어렵다. 친구들도 씀씀이를 줄였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전했다. 무엇이 진짜 중국의 모습일까.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중국은 연일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불 조치를 내리는 모습에선 “끝까지 간다”는 태세가 읽힌다. 첫 번째 무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다양한 대응 카드들을 준비해왔고, 이를 미국의 공격 정도에 따라 하나씩 내놓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대화하고자 하면 문을 열어놓겠지만, 싸우겠다면 끝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에 끌려가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대미 의존도를 줄인 데다 중국에는 미국산 제품을 다른 국가나 자국 상품으로 대체 가능한 선택지가 있으며 위안화 평가절하, 미 국채 매도 등 강력한 보복 수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14억 내수 시장은 중국의 ‘믿는 구석’이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중국 내 공항을 방문할 때마다 새삼 중국 시장의 거대함에 놀란다. 중국 내 총 263개의 공항이 운영 중으로, 항공업 직접 고용 인원만 59만 명에 달한다. 항공업 관련 산업 전체 고용 인원을 따져보면 무려 1020만 명이다. 워낙 땅이 넓어 지역 간 이동에 비행기가 필수이기에 중국 인구만으로도 항공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이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며 얼마 전 발표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4%를 달성했음을 짚었다. 그는 “중국 경제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보다는 미국이 버틸 수 있을지가 더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무역 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말대로 실제 피부에 와닿는 경제 상황은 매우 나쁘다. 불황의 그림자 아래 단돈 10위안(약 2000원)이면 머리를 자를 수 있는 ‘거리 이발사’들이 베이징(北京) 곳곳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두유와 쌀죽 등 아침 메뉴를 3위안에 해결할 수 있는 ‘3위안 조찬’도 등장했다. 각종 식당에서 가성비 좋은 메뉴를 줄줄이 내놓는 게 트렌드가 되면서 이를 일컫는 ‘충구이(窮鬼) 세트’도 유행이다. 충구이는 중국어로 거지, 가난뱅이란 뜻이다. 중국 정부는 내수를 살려야 한다며 “돈을 쓰라”고 연일 촉구하지만, 서민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고 말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 어려운 경제 상황에 허덕이는 모습 중 어느 것이 진짜 중국의 모습인지는 이후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 치킨게임 중인 미·중 사이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이번 무역전쟁의 결과를 잘 지켜볼 일이다.

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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