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87체제 극복 개헌 본질은 분권

소선거구제-양당제 폐해 증폭

중임제·내각제와 함께 다뤄야

 

거대 정당의 과대 대표성 심각

온건 다당제로 권력 분점 강제

대통령 결선투표 도입도 중요

윤석열 사태 이후 ‘19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개헌 주장이 나온다. 1987년 체제는 5년 단임 대통령제만 뜻하진 않는다.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양당 지배의 국회도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서로 적대시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양당 체제를 그대로 둔 권력구조 개편은 실효가 없다. 선거제도를 개혁해 정당 체제도 개편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의 해법으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거론된다. 총리를 행정 수반으로 삼고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총리와 내각을 선임하게 하며, 외치(外治)는 대통령, 내치(內治)는 총리에게 맡기는 게 골자다. 국회가 총리와 내각을 구성한다 해도, 여대야소에서는 국회를 지배하는 대통령의 당이 사실상 임명권을 행사하게 된다. 대통령제의 여대야소 때와 달라질 게 없다. 그렇다면 여소야대에서는 분권이 될까? 제왕적 총리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다. 야당 지배의 국회와 행정 수반인 총리가 한 몸인데, 입법 독재에 나서도 막을 방도가 없다.

그러니 대통령제는 그대로 두되,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는 주장이 있다. 첫 4년은 재선을 위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지만, 더 단기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퇴임 시계만 돌아가는 다음 4년은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여대야소 때는 제왕적 대통령, 여소야대 때는 야당 지배 국회와 싸우느라 아무 일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의 민주국가들처럼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자는 주장도 있다. 내각제는 대통령제와 달리 권력 융합을 원리로 한다. 의회를 지배하는 정치세력이 총리와 내각을 배출해 행정부도 장악한다. 따라서 다당제가 아닌 양당제에서는 일당 지배의 강력한 독재정권이 탄생할 수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권도 국회가 갖게 될 텐데, 국회와 정부를 동시에 지배하는 다수당이 당파성을 기준으로 법관들을 임명하는 경우, 삼권 융합마저 가능하다. 선거법을 집권당에 유리하게 바꾸는 일 또한 서슴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만 상상하는 게 아니다. 이미 우리 국회에서 경험했던 일들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를 멈추고 다시 발전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국회의원선거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두 거대 정당이 과대 대표되며 승리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양당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호 관용도 모르고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절제하지 않고 맘껏 휘두르는 거대 정당들이다.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입법부인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게 해선 안 된다.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파편화한 다당제화는 막아야 한다. 유효 정당 수 4∼5개 정도의 온건 다당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봉쇄 조항(문턱)을 현행 3%에서 독일처럼 5%로 높여야 한다. 그러면 중도좌, 중도우의 다소 큰 정당이 2개, 그리고 그 옆에 그보다 조금 작은 정당 2∼3개가 국회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다당제여서 대통령의 당이 국회에서 단독 과반이 되긴 어렵다. 국회 내 안정 의석 확보를 위해선 김대중 정부 때처럼 2∼3개 정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이때 연립 파트너 정당은 대통령과 집권당의 조력자임과 동시에 내부의 거부권 행사자가 된다. 대통령이 다수 연립내각 구성에 실패해도, 국회는 양당제 때와 달리 1개 거대 야당의 지배 아래 놓이지 않는다. 다수의 야당이 국회를 분점한다. 이 경우,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면 사안별로 정책연합이 가능하다. 여소야대라도 적대적 양당제에서 벗어나 있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립과 교착 문제는 지금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선거에는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에서 보듯 억지춘향식 합당이나 단일화가 아닌, 독립된 정당 간 연대와 연합을 유도한다. 1차 투표에서 확보한 지지를 바탕으로 각 정당은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합종연횡을 한다. 작은 정당은 확실한 지분을 갖고 유력 대통령 후보와 협상을 벌인다. 결선투표 때 함께한 정당들과 연립내각을 구성해 승리의 과실을 함께 나눈다. 대통령제이지만 승자독식이 아니다. 비례대표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해 온건 다당제와 연립정부가 형성되면, 어떤 권력구조가 되든 한국 정치는 협의 민주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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