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후의 서재

처음엔 E급이었다. 던전에서 한 방 맞으면 죽을 수 있는, 세계 최약의 헌터. 죽음을 앞둔 그에게 ‘시스템’이 주어진다. 그 순간부터, 아무도 모르게, 오직 혼자서만 레벨업할 수 있게 된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16년 카카오페이지에서 시작된 추공 작가의 웹소설로, 2018년에는 장성락의 작화로 웹툰으로 리메이크되었고, 2024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강해지는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공정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세계관은 잔인하다. 재능은 선천적 계급으로 나뉘고, 그것이 삶의 모든 가치를 결정한다. 최하위급 성진우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가난과 무시가 일상인 그에게 어느 날 기적이 찾아온다. ‘시스템’과 연결되어 혼자만 레벨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스템은 게임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다. 몬스터를 처치하면 경험치를 얻고, 퀘스트를 완료하면 보상이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 정확히 결과가 돌아온다. 성진우는 뼈가 부서지고 피를 쏟으면서도, 매일 던전에 들어가 싸운다.

이 작품이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룰은 자주 바뀌고, 보상은 엉뚱한 사람에게 돌아가며, 실패는 늘 개인 책임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은 그런 현실을 뒤집는다. 시스템은 공정하고, 노력은 배신당하지 않으며, 실력은 정확히 인정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정한 시스템조차 성진우에게만 ‘우연히’ 주어진 것이다. 공정한 룰을 얻는 것조차 불공정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판타지라 부르는가?

그럼에도 독자들은 성진우를 응원한다. 공정함이 보장된다면,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현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열망을 정확히 포착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게임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노력하는 개인이 누릴 것이라며 약속되어온 허구의 보상과 지위에 대한, 절실한 욕망의 표현이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그것이 판타지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전혜정 청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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